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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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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인가, 좋고 싫음인가 #230702 나는 다양한 인간관계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타입은 아니다. MBTI에서, E(외향)와 I(내향) 사이를 아슬하게 줄타기하지만, 스스로는 I에 더 많이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들을 외면하거나 홀로 고립되겠다고 행동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어울리고, 적당히 뺄 수 있는 미지근한 거리를 선호한다.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함께 일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불편한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래 담아두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다양한 상호작용 중에서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좋고 싫음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끌어들..
끝맺음이 안되는 요즘 #230423 오랜만의 끄적임이다. 블로그에 임시 저장해놓고 쓰다만 글이 쌓여간다. 떠오르는 생각을 혹시나 잊을까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마무리짓지 못하고 결국에는 왜 시작했는지 조차 기억에서 잊혀진 글도 여럿 있다. 급한 것부터 해결한다는 핑계로 밀리고 밀려서 마무리는 못하고, 지우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마냥 남겨두기에도 애매해진 글들을 보자니 속상하다. - 마찬가지로 학교 업무용 컴퓨터에는 쓰다만 계획서가 쌓이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담임을 내려놓고, 학교 일에 온전하게 집중하게 되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일을 하는가 들여다보게 되었다. 무언가 끝맺지 못하거나 용두사미를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일의 마무리 단계 이전까지는 끊임없이 벌여놓고, 어떻게든 수습하고, 그럴듯하게 마무리하려고 아둥바둥하는 것에..
칭찬 받아왔던 일들이 당연한 것이 되어갈 때 #221208 둘째가 내 귀에 몰래 속삭였다. "오늘 유치원에서 당근이랑 김치랑 콩도 먹었어요." "우와~ 너무 대단한데??" 놀란 표정과 과장된 몸짓으로 응해주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내 반응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둘째는 집에서 야채 언저리에 있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짜파게티의 건더기 스프 녹색 한 톨도 걸러내는 필터가 입에 내장되어있다. 유치원에서 먹었다는 당근의 크기와 김치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하지 않다. 먹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이벤트임이 분명하다. 종종 담임 선생님이 증언해주시는 것을 보면 오늘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유치원 식판에 불그스름한 김치 잔해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는 것을 보아 거짓은 아닐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까 귓속말..
오늘 카페에서 있었던 일 (feat. 각자의 사정) #20220521 주말에 집에만 있기에 따분하여 모처럼 가족들과 시장 구경을 하러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더워서 더이상 걸을 수 없다는 아이들의 말을 핑계삼아 카페인 충전소로 들어갔다. 아침에 커피를 챙겨마시지 못한게 타격이 있나보다. 읍 단위에 흔치 않은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 맛은 오랜만이다. 둘째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와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큰 컵으로 두 잔 시켰다. 이미 주문을 마쳤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들 음료가 없다. 뒤늦게 청포도 에이드 하나를 추가로 주문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둘째는 형아의 청포도 에이드를 한 입 먹더니 '우웨~엑' 하더니 맛이 별로란다. 첫째는 호로록호로록 잘도 마신다. 두 아들 취향 참~ 다르다. 카페에 사람이 별로 없긴 했지만, 그래도 저..
할 일이 많을 때는 딴짓이 재밌는 법 #220105 1. 어제를 끝으로 2021학년도 정규 교육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3학년 3반은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무사히 졸업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고, 모두 학교를 떠났지만 학급 단톡방은 졸업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달라진 점이라면, 성인이 되었음을 스스로 자축하는 사진들이 종종 올라오고, 평소와 다르게 나의 일방적인 공지사항보다 아이들의 메시지가 더 많이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복직 후, 첫 학교, 첫 학급을 이끌어가는데 나의 이전 경험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혼자 고민을 많이 했었다. 각가지 이유로 쉴 새 없이 터지는 사안과 고민들은 안그래도 넘치는 수업시수로 정신 못 차리는 나를 코너로 몰아붙였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썼던 당시의 일기..
학생과 교사들을 위한 심화실험공간이 생겼다 #211107 지역교육과학정보원에서 발간하는 정보지에 투고를 하게 되었다. 내일이 마감인데, 정해진 주제 속에서 4쪽 이내 분량으로 생각을 전달하려니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다가 어찌어찌 마무리되어 블로그에도 살짝 남겨두려 한다. 다시 읽어보니 시간을 들인 것에 비해 별 내용은 없는 것 같다. 중간 중간에 포함되어야할 그림자료들이 빠지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1. 지역 체험센터에 심화 실험실이 생기다. 지역교육과학정보원에 수리과학정보체험센터가 개관했다. 센터 4층에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심화실험실도 함께 자리잡았다. 비용과 관리 문제로 학교 현장에서 구입하기 어려웠던 여러 심화교구와 기기들 또한 배치되었다. 이 공간에서 교사들의 과학 연수와 학생들의 심화 과제연구가 이루어질 수..
디핵 & PATEKO - OHAYO MY NIGHT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9월 어느 날이었을까? 아침 출근길에 음원 사이트 랜덤 재생으로 흘러나온 노래 하나가 나를 집중하게 했다. 운전하다 흘끗 쳐다본 센터페시아 화면에 표시된 가수와 제목 모두 낯설었다. 알아듣지 못한 부분이 몇 군데 있었지만, 중간 중간 들리는 가사들이 인상깊어 다시 들어봐야만 할 것 같았다. 다시 재생했다. 가사에 집중했다. OHAYO MY NIGHT (안녕 나의 밤?) 처음보다 들리는 가사가 많았다. 흘러가는 멜로디는 가사와 너무 잘어울렸다. 가사가 예쁘고, 시적이었다고 하는게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런데 듣다보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자꾸 울컥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울컥했다. #211028 밤 12시가 넘었으니, 10월 28일이다. 다음 날 수업 ..
주 4일제가 되려거든 수요일을 휴일로! #20211021 화요일, 긴급하게 수요일 단축수업이 결정되었다. 여건상 정상적인 급식은 이루어질 수 없고, 빵으로 대체 급식을 지원하는 방법을 비롯해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우리 학교는 학생들을 조기 귀가시키고, 학사일정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물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너네, 2회 고사 마지막 날 급식 생기고, 정상수업할 예정이야! 진정한 조삼모사인 것을...) 수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순식간에 학생들이 학교를 빠져나가니 교실이 휑해졌다. 갑자기 오후 수업이 사라지니, 선생님들도 그동안 미뤄두었던 개인적인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와이프네 학교도 우리 학교와 같은 결정이 내려져, 이번 기회에 함께 조퇴하여 두 아이의 독감 백신 접종을 하기로 ..
고3 담임의 9월은 무사하셨습니까? #201004 드디어 9월이 지났다. 지난달 포스팅한 글이 없다. 잡담 같은 일기글도, 분노에 차서 무지성으로 휘갈기고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비공개 글마저도 없다. 그냥 블로그에 글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대로 9월이 지나버렸다. 지금은 10월이다. 그리고 1회 고사(중간고사) 전 맞이한 모처럼의 휴일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작년보다 블로그 포스팅의 절대량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올해는 글을 쓸 수 있는 물리적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부족했다. 아침, 저녁으로 1시간씩 출퇴근, 주당 이틀 아이들 유치원 등원, 주당 18시간의 수업, 3개 학년 4개 과목 지도로 인한 준비와 평가, 담임과 학교 고유 업무 등등등. 어찌어찌 펑크내지 않고 버티긴 했는데, 그러다 보니 블로그가 중요도..
#슬기로운 교사생활 #20210723 1.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가 시작되었다. 바쁜 1학기가 어느 정도 정리된 뒤, 하나씩 챙겨보고 있다. 제목이 슬기로운 병원생활이 아니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점도 좋다. 각본에 의해 쓰여진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 병원에서의 의사들의 치열한 하루하루를 100% 공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공간 속 의사들의 희로애락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고,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는 병원 속 에피소드들을 통해 현재 내 모습, 내 과거, 내 주위 환경에서의 일들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특별한 우리들의 평범한 매일" 드라마를 볼 때마다, 슬기로운 교사생활도 만들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한다. 그 역시 대단한 사건과 스토리를 가진 무거운 ..
평가에 대한 단상 #210706 1. 개인적으로 수능형 킬러 문항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화학적 개념을 살짝 가미한 수수께끼라 생각한다. 물론, 내가 풀이에 능숙하지 않아서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스스로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풀이 방법과 결과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문제를 풀고, 해설하는 과정에서 조차 출제 의도와 화학적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고, 그런 문제를 짧은 시간 동안 풀어내는 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어떤 화학적 역량을 길러주는지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다. 순수하게 화학적인 개념만으로 이루어진 문제를 출제할 수 없다는 현실도 알고 있다. 또한 나와 달리, 와이프는 이런 수수께끼와 같은 유형의 문제를 좋아한다. 스도쿠를 푸는듯한 재미가 있다고 한다. 나..
천둥 번개가 치던 날 #20210528 1.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아침 출근 길에는 비가 억수로 퍼붓더니 퇴근길엔 비가 완전히 그쳐 우산을 사무실에 깜빡하고 놓고 갈 뻔 했다. 수업 중에는 연신 번개 번쩍, 천둥이 우루루쾅쾅했다. 창밖이 번개로 번쩍할 때마다 수업을 끊고, 나는 "하나~ 둘~ 우르르쾅쾅" 이라고 천둥이 칠 타이밍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했다. "항상 번쩍한 다음에 몇 초 뒤에 우르르쾅쾅하지." 자기들끼리 왜 그런거냐고, 묻고 답하느라 웅성거린다. 교양으로서의 과학에 초점을 맞춘 나의 통합과학 수업에 딱맞는 좋은 날씨 자료였다. 이어서 천둥과 번개가 치는 이유까지 이야기했으면 좋았겠지만, 학생 한 명의 나지막한 "아~ 정전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적극 공감해버리며, 나의 고3 시절, 학생들 단체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