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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칭찬 받아왔던 일들이 당연한 것이 되어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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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8

둘째가 내 귀에 몰래 속삭였다.

"오늘 유치원에서 당근이랑 김치랑 콩도 먹었어요."
"우와~ 너무 대단한데??"


  놀란 표정과 과장된 몸짓으로 응해주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내 반응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둘째는 집에서 야채 언저리에 있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 짜파게티의 건더기 스프 녹색 한 톨도 걸러내는 필터가 입에 내장되어있다.

  유치원에서 먹었다는 당근의 크기와 김치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하지 않다. 먹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이벤트임이 분명하다. 종종 담임 선생님이 증언해주시는 것을 보면 오늘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유치원 식판에 불그스름한 김치 잔해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는 것을 보아 거짓은 아닐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까 귓속말 대비 나의 반응은 조금 부족했다. 시간을 몇 개월 전으로 돌린다면, 야채를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 스티커 한 장을 받을법 하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칭찬스티커를 얻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 더더욱 커지고 있다. 마지막 칭찬 스티커를 붙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왜인지 모르게 슬프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고, 점차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로서 놀라워 했던 일들은 점차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 벽을 짚고 일어섰을 때의 감동, 홀로 두 발로 뒤뚱뒤뚱 걸어 나갈 때의 감동, 어버버버 알 수 없는 옹알이를 하다 완성된 문장과 논리로 아빠의 말을 반박할 때의 (당황스러움)감동(?), 밥도 스스로 먹고 칫솔을 쥐고 양치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너무 당연해졌다. 받침이 없는 글자들을 더듬더듬 읽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더하기를 한다. 엘리베이터에 이리저리 정신없는 광고들 사이에서 나름 아는 글자를 소리 내어 읽으려 시도한다. 그런데 크게 놀라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시도는 다섯 살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대단한 일이다. 모든 것들이 처음이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그 대단함에 비하면, 부모 반응이 너무 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라 그 감동이 덜할 것을 스스로 알아서인지, 형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형보다 더 잘하고 싶어 하고, 스스로 설정한 기준도 높아진 듯한다.

뒤뚱뒤뚱 걷기만해도 칭찬받던 시절도 있었다. [출처] @pixabay jatocreate

 

  화요일과 금요일에 아이 유치원 오후 프로그램은 체육과 발레이다. 둘째는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 한 번도 두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 체육 시간과 발레 시간에는 체육관 한 켠에 놓인 소파(?)에 앉아 친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아이에게 체육과 발레 수업에 참여할 것을 회유해보지만 쉽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며, 자기가 싫은 일들을 무조건 다 거부한 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부모로서 그러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맴돌기에 고민이 된다. 혹시나 그것을 배울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지금 시기를 놓치면, 영영 도전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아이로 자라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에 자꾸 다그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유혹해보기도, 작은 변화에도 칭찬해주면서 우쭈쭈 추켜세워주기도 해보지만, 1년간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싫은 것은 절대 안 하고, 우스꽝스러워지는(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 남들보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남들 앞에서 하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성격이 누굴 닮은 건지 너무나도 알 것 같아서 뭐라 말을 못 하겠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실수하고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는 싫어 매사 고민하고 고민하는 편이다.

  유치원 하원 때, 매번 고생하셨을 담임 선생님 보기 미안한 마음이 쌓여감에 따라, 더더욱 조바심이 났나 보다. 모두가 함께하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려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학급 아이를 볼 때, 걱정됨과 속상함을 경험해봤기에 더더욱 민감하게 굴었나 보다.

  점차, (부모 생각에) 아이가 할 수 있을 거라고(또는 해야한다고) 생각되지만 (아이는) 하지 않으려는 행동들에 대해 집중하게 되고, 요구하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사회성이 부족해지지 않을까라는 부모의 걱정을 핑계 삼아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그런데,

  조금 더 느긋해질 필요가 있겠다.

  절대 야채를 먹지 않는 아이, 먹을 것이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아이가 조금씩 야채를 먹듯이, 아이가 스스로의 속도에 맞추어 이룬 것들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시도하는 것과 해낸 것들을 칭찬해주어야겠다.  아빠 귀에 몰래 자기가 칭찬받을 일을 '셀프 어필' 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요즘, 엄마 아빠의 칭찬을 받기가 너무 빡빡해요.'라는 것을 역으로 알려준 것이 아닌가 싶어, 왜인지 모르게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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