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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옳고 그름인가, 좋고 싫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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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2

 

  나는 다양한 인간관계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타입은 아니다. MBTI에서, E(외향)와 I(내향) 사이를 아슬하게 줄타기하지만, 스스로는 I에 더 많이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들을 외면하거나 홀로 고립되겠다고 행동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어울리고, 적당히 뺄 수 있는 미지근한 거리를 선호한다.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함께 일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불편한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래 담아두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다양한 상호작용 중에서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좋고 싫음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끌어들이려는 경우,구체적으로는
좋고 싫음의 문제를 무조건 옳은 것(또는 그른 것)이라 강요하는 경우이다.


  이 때문에 나 역시도 어떠한 문제에 대한 나와 다른 생각을 접했을 때, 그것이 옳고 그름에 따른 문제인지 좋고 싫음의 영역인지를 먼저 가려내려고 시도하는 편이다. 상대방이 좋고 싫음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하면 속으로 '아~ 그런가 보다~'하고 가볍게 넘어가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 생각이나 취향도 이야기할만한 부분이 있으면 비슷한 수준에서 이야기할 뿐이지 나의 생각이 특별히 중요하지는 않다.
생각의 방향이나 의견이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대로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야기 주제가 무엇인가? [출처] Pixabay @RonaldCandonga


  물론, 주제가 분명한 옳고 그름의 문제이거나, 집단 의사결정에 의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 경우에는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집요하게도 다양한 가능성을 따져대는 편이다. 이 때문에 쉽게 끝날 수 있는 회의나 대화가 나 때문에 피곤하게 길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학교에서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도, 학생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군가와의 대화 또는 상호작용의 상황에 놓였을 때, 눈앞의 문제가 옳고 그름의 문제인지 좋고 싫음의 문제인지를 파악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혹시나 개개인마다 각기 다를 수 있는 좋고 싫음에 관한 문제를 내가 억지로 옳고 그름의 문제로 끌고 와 대화를 피곤하게 이끄는 것은 아닌지를 스스로 질문하고 경계하는데 많은 신경을 쓴다.

  어쩌면 평소 주장(고집)도 센 편이고, 치열하게 논리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기 좋아하는 성향이라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알기에 자기 검열이 강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덕분에 각기 취향에 따라 선택 결과와 주장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거나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이 줄었다. 좋고 싫음의 문제는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기에 굳이 내 생각이 선택되어야 한다고 이유를 생각해 내며 설득하려 들지 않으면, 쓸데없는 논쟁이나 선택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존중입니다 취향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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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행사를 위해 현수막 A와 B 두 가지 시안을 받았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특정 현수막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옳은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절대적으로 옳은 이유임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가치가 비슷비슷한 A와 B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고민이 된다면, 이미 선택의 중요성이 작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좋고 싫음, 취향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A의 가치가 B에 비해 월등히 높다면, 애초에 고민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현수막을 고르는 문제는 좋고 싫음의 문제일 뿐이다. 아무거나 골라도 된다. 굳이 하나를 고르기 어렵거나 , 상급자의 취향에 의해 거절당할 것이라 생각이 들면, 상급자에게 은근슬쩍 선택을 넘기는 것도 결정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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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다른 이야기이고, 실제로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근 알고리즘의 발달과 비대면 활동의 발달이 '좋고 싫음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개개인의 선택과 자유는 강조되고 있으며, 개개인은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기술은 이러한 순간에서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내었으며, 과거에 전혀 일상적이지 않던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용어는 생활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나의 취향과 생각에 맞는 영상, 광고, 기사 등을 알아서 제공하며, 나의 선택 경험이 더해져 점점 더 최적화된 결과물을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극한의 효율로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내 취향이 아닌 것, 나와 다른 생각을 접할 기회를 점차 잃어가고,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은 반쪽짜리가 되어간다.

  내가 속하고, 자주 들르는 커뮤니티 내에서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주위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얻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어딘가 불편하고, 나를 지치게 한다. 따라서 굳이 불편한 경험을 애써 하면서 피곤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이는 단순한 좋고 싫음의 문제도 누군가에게는 옳고 그름의 문제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개개인의 삶이 모여 그러한 사회가 당연해져 버릴 수 있다. 자칫하다가는 좋고싫음의 문제, 취향의 문제, 우선시하는 가치에 따른 선택의 문제일지라도...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나의 생각에 동의하는데,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내 생각에는 네가 틀린 것 같아. 왜냐하면, 내 주위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너뿐이거든."


  ... 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를 맞이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러한 것이 사회의 기본 구조가 되었을 때, 극심한 양극화와 섬우주화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오늘날, 나와 생각이 달리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나를 위해서라도 더더욱 중요해졌다. [출처] Pixabay @Stocks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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