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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고3 담임의 9월은 무사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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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

 

  드디어 9월이 지났다. 지난달 포스팅한 글이 없다. 잡담 같은 일기글도, 분노에 차서 무지성으로 휘갈기고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비공개 글마저도 없다. 그냥 블로그에 글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대로 9월이 지나버렸다. 지금은 10월이다. 그리고 1회 고사(중간고사) 전 맞이한 모처럼의 휴일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작년보다 블로그 포스팅의 절대량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올해는 글을 쓸 수 있는 물리적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부족했다. 아침, 저녁으로 1시간씩 출퇴근, 주당 이틀 아이들 유치원 등원, 주당 18시간의 수업, 3개 학년 4개 과목 지도로 인한 준비와 평가, 담임과 학교 고유 업무 등등등.

  어찌어찌 펑크내지 않고 버티긴 했는데, 그러다 보니 블로그가 중요도에서 가장 먼저 밀렸다. 물론, 너무  방치하지 않으려 틈틈이 꾸역글을 몇 개 쓰긴 했지만, 9월에는 이마저도 못했다. 8월에 시행된 PEET, MDEET 풀이, 9월 모의고사 풀이, 학교 일상, 교과연구회 활동 등 소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무언가 글로 풀어낼 여유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고3 담임이 9월에 바쁘다. 고3 담임들은 왜 하필 9월에 바쁠까?

  사실, 8월 중순에 2학기가 시작되면, 고3 담임들은 철저하게 긴장모드, 예민모드로 변한다. 미어캣이 고개를 내밀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듯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8월 31일을 기준으로 대입에 사용될 3학년 생기부(생활기록부)가 생성되기 때문에 지난 1학기의 모든 활동, 그리고 진행중인 8월 활동을 실시간으로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개인 봉사활동과 독서 기록, 각 과목 세부능력 특기사항에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진로, 봉사, 동아리)까지 기록하고, 오류를 찾고, 수정하고를 반복한다.

  물론, 생기부 모든 영역을 담임 혼자 작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선생님들의 협조 또한 구해야 한다. 교과 담당,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부탁(이라 쓰고, 독촉이라 읽는다.)드리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다 보면, 어찌어찌 8월이 지나간다. 혹여나 생기부를 점검하다가 이전 연도 누락 활동이라도 발견되어 정정대장까지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다.

  올해는 학기별 수상 내역 선택이라는 단계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대입 공정성 시비로부터 새롭게 생겨난 단계라 그런지, 학생/학부모/교사 간의 믿음(이라 쓰고 의심과 견제라 읽는다)의 징표로 선택한 수상 내역을 출력하여 이상없음을 학생/학부모/교사가 확인하여 각각 서명한 뒤 나누어 갖는다...... 쩝.

 

  생기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이젠 수능 원서 접수 차례다. 사실, 수능은 학교 밖과 안의 온도차가 심하다. 적지 않은 수의 고3들에게 수능 원서접수란, 그저 연말 수험생 할인을 위한 수험표 획득을 위한 시작 단계인 경우가 많다. 정시보다 수시로 대학 가기 쉽고, 굳이 최저를 요구하는 전형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힘든 수능에 발을 담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수능 최저 정도를 충족시킬 자신이 있다면, 대학 선택지가 훨씬 많아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학생들이 수능 응시를 마음 굳히면, 원서 신청서를 수기로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교사가 시스템에 입력하여 접수하고, 시스템 입력 결과를 출력하여 학생 확인을 받고, 이상 없으면 실제 원서 용지에 출력하여 최종 확인 후 사진을 붙인다. 그리고 학교장 직인을 찍고 압인을 찍고, 테이핑 작업을 한다. 이 순간만큼은 컨베이어 벨트 위 작업자가 된다. 원서 사진 크기와 얼굴 비율이 약간이라도 규격에서 벗어나면, 교육청에서 퇴짜를 맞기도 한다. 그럼 그 건은 다시 첫 단계부터 다시 시작. 왜 수능 원서 접수와 수험표 출력은 아직까지 완전 디지털화되지 않는 것일까?

 

  그 다음이 진짜다. 수시 원서 접수. 물론, 학생들과 어느 정도의 상담은 이전에 이루어졌다. 그래도 결정하지 못한 디테일함이 있기에 개별 상담을 통해 마지막 확인을 한번 더 해야한다. 희망 학교, 학과, 전형을 따져보고, 전년도 입시 결과에 자신의 위치를 대입해본다. 6개의 카드를 과상/상향/소신/적정/안정/하향으로 어떻게, 얼마나 비중을 두어 분배할 것인지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고민한다. 답이 없다고, 우울해하는 학생을 위로하며 나름의 대안을 찾아주는 것은 덤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고, 원서 접수를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3 담임 입장에서는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학생들은 올해 처음이다. 원서대행 사이트 가입부터 지원 절차를 하나씩 알려주고, 유의사항을 강조한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교실 스크린에 컴퓨터 화면을 띄우고, 학생 한 명을 대표로 하여 원서 접수 과정을 보여준다.

  원서 접수 마지막 날이 되었음에도 접수를 하지 않는 학생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실시간 경쟁률을 보니, 이전의 굳건했던 마음가짐에도 균열이 생긴다. 약간의 눈치 싸움을 하면 경쟁률이 낮은 학과에 지원하여 합격률을 높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식당해버린다. 접수 마감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눈치 싸움을 하다가 마지막 접수를 간신히 한다.

 

  전형이 다양한만큼, 대학마다 요구하는 서류와 방식, 기간 또한 제각각이다. 학생부 교과 지역추천 전형의 학교장 추천서, 추천 명단, 공문 첨부 여부 등은 대학별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직접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 증빙서류는 하나씩 확인하지 않으면, 영~~ 찜찜하다. 학생들이 준비해온 서류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이상 없으면, 봉투를 봉하고, 우체국 빠른 등기가 이상 없이 출발했다는 영수증을 보아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물론, 확인한다고 했음에도 입학처에서 부족한 서류가 있다며, 꼭 다시 전화가 온다.)

  아! 자소서를 잊을 뻔 했다. 학생들의 글솜씨가 어떤지에 대해 말하려면, 별도의 글이 필요하다. 무엇을 상상하던 분명 그 이상이다. 자소서 피드백을 해주는 것인지 자아 찾기 프로젝트를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아직 추천서가 남아있는 학교도 있다. 복직 후에는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올해도 한 명 썼다. 그나마 학교가 많이 줄어서 수월했다.

자소서를 볼 때마다 내 표정이 이렇지 않을까...?

 

  얼추 끝난 것 같다. 한 숨 돌리고, 그간 신경 쓰지 못한 학교 업무가 무엇이 있나 지난 업무 메시지를 하나씩 살펴본다. 아... 1회 고사 원안지 제출 기간이 코 앞이다. 과연 내가 제출 기일을 지킬 수 있을까? 걱정마라. 여태껏 10년 동안 내가 출제를 하지 못해서 정기고사가 연기된 적은 없었으니까. 미래의 내가 분명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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