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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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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연금술 #20210409 학교 수업에는 관심이 없지만, 독서 자체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다. 해당 학생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책 100권 읽기를 올해 목표로 정했다고 전해 들었다. 개인적으로, 수업 시간에 의미 없이 멍 때리거나 자버리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꾸준히 읽을 수만 있다면 수업을 듣는 것 이상으로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수업 중 독서를 허용해주는 결정이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몇 가지 책을 추천해줘도 되겠냐고 물었다. 학생의 독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학생이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가 가장 먼저 추천한 책은 토마스 헤이거의 공기의 연금술이었다. 집에 보관 중이던 책을 다음 날 학생에게 건넸다. 화학 1의 첫 단원인 '우리..
혹시, 괜찮은 학원을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20210403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찾아온 주말은 소중하다. 개인적인 휴식을 취하고,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내야 한다. 평소 해결할 수 없었던 밀린 일들도 해둬야 한다. 봄비가 내리기 전에 벚꽃을 즐겨야 하는 것이 우선인듯하지만, 이미 비가 와버렸으니 이건 늦었다. 오늘은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하기로 했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져 더이상 눈은 오지 않을 듯하니, 겨우내 끼고 다니던 스노타이어를 사계절용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지난 겨울 타이어를 맡겨놓은 카센터로 향했다. 예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의 추천으로 알게 된 곳인데, 사장님이 친절하시고 여러모로 만족도가 높아 그 뒤 단골이 되었다. 타이어를 교체하는 동안 마시려고 커피를 사갔는데, 코로나로 인해 휴게실에서 음료를 마실 수가 없다는 안내 문..
이 루틴을 벗어날 수 있을까? 아침 6시 30분에 첫 번째 알람이 울린다. 사실, 매번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에 깨곤 한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재빨리 끄고, 두 번째 알람이 울릴 때까지 잠깐 잠을 청한다.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알람이 울리면,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욕실로 향한다. 어느덧 시계는 7시를 넘어서고, 휴대폰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면서 자가 진단을 한다. 어지럽게 걸려있는 옷들 중 최근에 입은 기억이 없는 것을 주섬주섬 걸치고 집을 나선다. 차에 시동을 걸고,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10분. 다행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중간에 스타벅스에 들를 수 있다. 사이렌 오더로 오늘의 커피 한 잔을 미리 주문해놓고, 출근길에 오른다. 스벅에서 1분, 타이밍이 맞지 않는 신호에 1분, 2차선 도로에 꾸물꾸물 기어가는 차량에 답..
한글 공부가 재밌을 나이 #20210227 새 학기를 준비해야 하는 건 복직하는 교사나, 여섯 살 유치원생이나 마찬가지다.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하려 미용실을 찾았는데, 다들 생각이 비슷했었는지 웨이팅이 좀 있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해할 첫째에게 휴대폰을 권했는데, 웬일인지 관심이 없다. 첫째는 요즘 한글 읽기가 재미있나 보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는 간판 속 글자에 관심을 갖는다. 사실, 아직 아는 글자가 몇 개 되지 않는다. 또래에 비해 시기적으로도 빠르지도 않다. 그래도 굳이 글자를 익히라고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본인이 답답하고, 관심이 생기기 시작할 때, 자연스레 익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이가 궁금해하면 하나씩 알려주고, 점점 넓혀가는 식이다. 아들: 아빠! 저기 있는 글자에 받침대(받침)가 없으면..
(새로운) 학교로 돌아갑니다. #20210219 대부분의 사람들이 1월부터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에 반해, 교사들은 3월 개학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한다. 나 역시 3월부터 새로운 지역, 새로운 학교에서 3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질 예정이다. 지난 17일, 18일 이틀에 걸쳐 새로 부임할 학교를 다녀왔다. 1. 새로운 학교까지 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시골 학교라 관사가 있지만, 우리 집 꼬마들 유치원 등원 문제로 학교 관사를 신청할 수 없었다. 일단은 멀어도 출퇴근을 해야 할 듯하다. 운전에 각별히 유의해야겠다. 장거리를 반복해서 출퇴근하다 익숙해지면 긴장이 풀어지고, 졸거나 위험할 수 있다. 내년에 와이프가 근처 지역 학교로 이동할 수 있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듯하지만, 올해는 어찌..
준비를 하다 #20200115 1. 2021 년이 밝은지 보름이 되어간다. 1 년의 휴직을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왔다. 아직 두어 달이 남았기에 뚜렷하게 무언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복직원과 전보내신서를 제출했다. 돌아갈 곳이 어딘지는 알 수는 없으나 돌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지난 2020 년을 기점으로 학교 현장은 많이 변했다. 온라인으로 학사 일정을 진행해야만 했으며, 수시로 손봐야만 했다. 평소 당연시 여기던 여러 행사가 취소되기도 하고,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새롭게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아지고 다양해졌을 것이다. 그러한 1 년을 현장에서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다. 며칠전 웹캠을 샀다. 3월이 되면, ..
칼 포퍼의 반증주의 0. 가끔 이런 잡생각에 빠지는걸 어찌해야 하나 모르겠다. 다 쓰고 나니 뭔 말인가 싶기도 하다. 1. 근대 과학을 대표하는 과학철학 사상은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의 과학 혁명의 구조이지만, 나는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의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를 더 좋아한다. 쿤의 패러다임 이전 과도기적 사상으로 과학 교육론에서 언급된다. "과학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져야 하며, 반증 가능성이 큰 이론일수록 좋은 과학 이론이다." 포퍼는 반증주의를 통해 과학 이론이 어떻게 이론으로서의 지위를 잃는지와 살아남는지에 대해 말했다. 다양한 반증 사례를 견뎌내면, 이론으로 남지만 견디지 못하면(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면) 폐기된다. 과학 이론의 잠정성..
중고 거래를 하다 #20201226 당근 어플을 이용하면, 평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팔거나 나눌 수 있다. 평화로운 중고나라의 택배 거래가 부담이 되거나 팔려는 물건의 부피가 커서 택배를 이용하기 곤란할 때 유용하다. 우리 집에도 사용하지 않고 묶혀둔 여러 물건들이 있다. 일종의 잠재적 매물들이다. 한 가지 걸림돌은 내가 중고 거래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 매물 탐색 어느 주말 오전, 오랜만에 집안 곳곳을 청소하다 방치된 미끄럼틀이 와이프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2017 년에 구입해서 아들 둘이 잘 타고 놀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서인지, 더 재밌는 다른 놀잇감들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미끄럼틀을 타는 걸 본 기억이 몇 번 없다. 공간만 차지하는 미끄럼틀을 분해하여 아이들 방에 저상 침대를 놓는게 어떨지에..
삼촌이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 #20201222 집집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우리 집은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명확하게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돈이다. 그게 우리 집 스타일이다. 누군가는 딱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 이렇게 살아오다 보니 은근히 편하다. 동생은 자기 생일에 야구 관람권을 요구하고, 나는 찜해두었던 안경을 요구한다. 자연스레 동생은 어린이날, 크리스마스가, 아이들 생일이 가까워지면,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묻는다. 우리 집 분위기를 알아서인지, 엄마아빠, 장인장모님, 동생네, 처제네, 후배네 가족 모두 우리 애들이 요즘 어떤 장난감에 꽂혔는지, 무얼 가장 갖고 싶어 하는지를 경쟁하듯 물어온다. 마찬가지로, 며칠 전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결국 추천해주지 못했다. 사실, 장난..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 #20201218 고등학교 화학 교사. 월터 화이트가 폐암 진단을 받고, 가족에게 돈을 남기기 위해 마약을 만드는 이야기. 2008년에 처음 방영되어 2013 년에 종영되었다. 총 다섯 시즌. 개인적으로 아껴두었던(아끼다 똥 된다.) 미드다. 대놓고 화학을 메인 소재로 하는 드라마인데, 평가까지 엄청 좋아서 혹시나 실망할까 봐 두려워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시즌이 긴 편이기도 하고...) 그런데 눈치 없는 넷플릭스 알고리즘은 내 마음도 모르고 자꾸 추천을 해대서 눈에 밟히는 걸 애써 외면해왔다. imdb : 9.5/10.0 , 로튼토마토 : 96%, 98% 그러다 정말 우연히,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시작해버렸다. 빤스 차림으로 등장한 주인공 월터 화이트가 초반에 정신을 쏙 빼놓고, 급박하게 꼬여만가는 상..
잡담은 잡담일 뿐 #20201127 요즘 나도 모르게 블로그라는 공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나 보다. 예전에는 그냥 한 줄, 두 줄 일상을 그냥 남긴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단순 끄적임이었는데, 화학 관련 글들로 인해 일일 방문자수가 조금씩 늘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내용만을 취사선택해서 남기고 있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순간의 생각들을 끄적여 남기지 못하고, 희미해지게 만들어버렸다. 오늘부터라도 되도록 끄적임은 짧게, 순간 들었던 좋은 생각들, 장면들은 놓치지 않도록 메모하듯 채워나가야겠다.
외부인이 된다는 것 #20201030 어제 학교에 다녀왔다. 별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저 작년까지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들 얼굴 볼 겸 들렀다. 핼러윈 코스츔에 들뜬 아이들 등원을 마치고, 구입해둔 원두 한 봉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 현수막이 나를 반겼다. "외부인은 출입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가파른 오르막길 끝, 보안관실 앞에 차를 세웠다.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가볍게 인사했다. 그리고는 '외부인 출입 대장'을 적었다. 소속란을 채우며 순간 움찔했고, 방문 목적을 적으며 한참을 머뭇거렸다. "보안관님, 이거 뭐라 적는 게 좋을까요?" 따지고 보면, 아직 공식적인 내 소속은 여기다. 단지 휴직 중일뿐이다. 물론, 이미 학교 연한이 끝났기에 복직한다고 이곳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정원 외인 상태다. 서류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