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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중고 거래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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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6

  당근 어플을 이용하면, 평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팔거나 나눌 수 있다. 평화로운 중고나라의 택배 거래가 부담이 되거나 팔려는 물건의 부피가 커서 택배를 이용하기 곤란할 때 유용하다. 우리 집에도 사용하지 않고 묶혀둔 여러 물건들이 있다. 일종의 잠재적 매물들이다. 한 가지 걸림돌은 내가 중고 거래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 매물 탐색

  어느 주말 오전, 오랜만에 집안 곳곳을 청소하다 방치된 미끄럼틀이 와이프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2017 년에 구입해서 아들 둘이 잘 타고 놀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서인지, 더 재밌는 다른 놀잇감들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미끄럼틀을 타는 걸 본 기억이 몇 번 없다. 

  공간만 차지하는 미끄럼틀을 분해하여 아이들 방에 저상 침대를 놓는게 어떨지에 대해 와이프와 대화를 나눴다. 첫째는 미끄럼틀이 팔리면, 침대를 사주겠다는 말에 한방에 OK 했다. 둘째는 뭔 상황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엄마 아빠 형이 미끄럼틀 어쩌구 저쩌구 하니 갑자기 연신 미끄럼틀을 탄다. 어쨌든 4인 중 3인 찬성으로 처분을 결정하였다.

  중고 거래를 위한 사진을 찍었다. 구석 구석 살펴보았는데, 특별히 망가진 부분도 오염된 부분도 없어서 매물로 내놓기에 부끄럽지는 않았다. 다만, 4 년 가까이 햇빛을 받은 탓에 스티커 색이 조금 바래고, 사용감이 조금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분해를 시작했다. 부품 하나하나 씻고, 닦아내니 나름 괜찮았다. 둘째는 울기 시작했다. 절대 안된단다. (물론, 하루 지나고 다시 물어보니 미끄럼틀 필요 없단다.)

 

2. 가격 책정

  얼마에 내어놔야 할까? 평화로운 중고나라에 시장 조사를 갔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구입 시기, 파손 및 오염 정도에 따라 신품 가격의 20% ~ 90% 까지 다양했다.

  특히, 우리집 미끄럼틀은 이미 단종된 것 같았다. 같은 제품이 리뉴얼되어 색감도 더 예쁘고, 군데군데 안정성이 개선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신형을 원할 것 같았다. 욕심부리지 않고 저렴하게 내놓기로 했다. 팔리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가격을 슬금슬금 내리면서 눈치 보는 것보다 빨리 처분하는 것이 심적으로 덜 피곤할 것 같았다. (물론, 정작 팔리고 나니 너무 싸게 팔았나? 이런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구매를 희망하는 분이 빨리 나타났다. 메시지가 왔고, 거래 일자도 바로 정했다. 집이 가까워 직접 가져다 드리기로 했다. 구매자 프로필을 보니 거래 평가도 좋았고, 육아용품 관련 거래 횟수도 많으셨다.

 

3. 판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중고 거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는 것도, 파는 것도 별로다. 거래 과정에서의 불확실함이 싫다. 구매할 때는 제품 상태가 괜찮을까? 경제성이 있을까? 싼 것 찾다 괜히 시간 버리고, 돈 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기 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불확실함에서 오는 잡생각들이 싫다.

  팔 때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적당할까? 구매자가 까다로우면 어쩌지? 괜히 꼬투리 잡아 흥정하려 들면? 이런 불확실한 생각들이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알수 없는 구매자와 메시지, 혹은 전화로 건조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조금 불편(불안)하다.

  어쨌든 약속했던 거래일이 되었다. 구매자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미끄럼틀을 차에 실었다. 5 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리고 직접 물건을 건네고, 약속한 금액을 받았다. 미끄럼틀의 새로운 주인은 낮잠을 자고 있어서 구매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거래는 끝났고, 집으로 돌아왔다.

  후련하기도 하고, 살짝 허무하기도 했다. 혹시나 만족스럽지 않다며 뒤늦게 항의하지 않을까 살짝 불안하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 긍정적인 거래 후기 외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누군가 사용했던 것이기에 새 것이 주는 것과 같은 설렘은 없겠지만, 낮잠에서 깨어난 새 주인이 미끄럼틀을 보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그랬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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