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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칼 포퍼의 반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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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가끔 이런 잡생각에 빠지는걸 어찌해야 하나 모르겠다. 다 쓰고 나니 뭔 말인가 싶기도 하다.

 

1.

  근대 과학을 대표하는 과학철학 사상은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의 과학 혁명의 구조이지만, 나는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의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를 더 좋아한다. 쿤의 패러다임 이전 과도기적 사상으로 과학 교육론에서 언급된다.

"과학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져야 하며, 반증 가능성이 큰 이론일수록 좋은 과학 이론이다."

  포퍼는 반증주의를 통해 과학 이론이 어떻게 이론으로서의 지위를 잃는지와 살아남는지에 대해 말했다. 다양한 반증 사례를 견뎌내면, 이론으로 남지만 견디지 못하면(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면) 폐기된다. 과학 이론의 잠정성을 전제로 한다.

  나는 '반증 가능성(falshifiability)'이라는 용어가 좋다. 어떤 과학 이론이 완전히 반증되면, 이론의 지위를 잃는다. 자연히 좋은 이론, 나쁜 이론의 판단 대상도 되지 않는다. 반면, 반증 가능성이 없는 완전한 이론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진리(truth)로 여겨질 뿐이다. '반증 가능성'이라는 용어는 과학자의 확신을 경계하고, 과학 이론이 영원불변하지 않다는 잠정성을 드러낸다.

  이론(theory)이란, 생각이자 의견이다. 과학 이론은 과학자의 정돈된 생각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아무 생각이나 과학 이론의 지위를 갖지는 않는다.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검증 이전의 생각은 가설(hypothesis)에 머무른다.

  반증 가능성이 클수록 좋은 이론이라는 위의 문장은 마치 모순인 듯 하지만 '반증 가능성'이라는 용어가 '반증되어 폐기될 가능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반증 사례가 나타날 수 있는 범위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반증 가능성이 크다는 말은 오히려 해당 이론이 다양한 상황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에게만 적용되는 이론보다 우리에게 적용되는 이론의 반증 가능성이 더 크고, 다수에게 적용되고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의 반증 가능성이 훨씬 훨씬 크다.

  과학자의 생각이 이론의 형태로 세상 밖에 나오면, 다양한 반증 사례를 맞이한다. 이를 견디고, 다듬어지면서 점점 좋은 이론에 이른다. 그렇다 해도 결코 완전무결함에 도달함을 뜻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의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정상과학의 지위에 올라섰다해도 '반증 가능성'이 0이 될 수 없다. 언제나 반증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과학은 그렇게 발전해왔고, 그렇게 발전한다.

 

2.

  칼 포퍼가 정치 철학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정치 철학자의 관점에서 과학의 발전을 설명한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까지는 잘 모르지만 과학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을 연관지은 그의 생각에는 동의한다.  포퍼는 다양한 생각과 그 생각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허용되는 사회가 열린 사회라 했다.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허용된 사회가 열린 사회이며, 진보된 사회다."

  과학이 반증 가능성을 발판삼아 발전해왔듯, 사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그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사회가 점점 진보한다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것인데... 사회가 아닌 개인 관점에서는 이전보다 신경 쓸 일이 많아지고, 피곤해진 건 아닐까.

  다양한 생각이 인정되고, 공존한다는 말은 동시에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의견에 더 많이 노출됨을 뜻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의견은, 때로는 내 의견의 직간접적인 비판이 되기도 하며, 내 의견을 정면으로 부정하기도 한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다. 물론,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사회이므로 반박할 수도 있고, 생각의 정당성을 펼칠 수도 있지만 이런 과정은 피로함을 동반한다.

  인터넷 공간은 다양한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이런 열린 공간에서 의미없는 댓글 하나가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여럿 볼 수 있지 않은가? 

...

  열린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열린 개인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정당한 비판에 감정 상하지 않고, 내 생각과 다른 관점에서 펼쳐진 생각을 적극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 옳고 그름으로 가려지는 문제가 아닌, 좋고 싫음 영역의 문제는 나 아닌 누군가에게도 강요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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