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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공기의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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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학교 수업에는 관심이 없지만, 독서 자체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다. 해당 학생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책 100권 읽기를 올해 목표로 정했다고 전해 들었다. 개인적으로, 수업 시간에 의미 없이 멍 때리거나 자버리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꾸준히 읽을 수만 있다면 수업을 듣는 것 이상으로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수업 중 독서를 허용해주는 결정이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몇 가지 책을 추천해줘도 되겠냐고 물었다. 학생의 독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학생이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가 가장 먼저 추천한 책은 토마스 헤이거의 공기의 연금술이었다. 집에 보관 중이던 책을 다음 날 학생에게 건넸다.

  화학 1의 첫 단원인 '우리 생활과 화학'에는 질소 비료 개발과 관련된 하버-보슈의 암모니아 합성 공정이 등장한다. 그리고, 꽤나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런데, 프리츠 하버와 칼 보슈의 업적만 놓고 보면 그냥 천재 과학자의 대단한 스토리 정도로 여겨지지만,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마냥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는 부분도 있었기에 이야기가 흥미롭다. 당연히 관련 내용을 풀어놓은 '공기의 연금술'이 학생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책을 건넨 뒤 2~3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학생이 나에게 책을 돌려주었다. 벌써 다 읽었다고,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학생이 오히려 고마웠다. 간단한 독후감을 써보자고 슬쩍 제안했다. 기록 유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생활기록부에 독서 기록 증빙도 할 겸, 독후 일지를 건넸다.

  그 날 바로 독후감을 작성해서 나에게 가져왔다. 스스로 글솜씨가 별로라며 부끄럽다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훌륭했다. 학생의 동의를 얻어 '공기의 연금술 독후감'을 남긴다.

제목: 공기의 연금술(토마스 헤이거)

작성일: 2021/04/09/금

  이 책은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의 화학자로서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다. 1900 년대 초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 생산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대기근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하버와 보슈가 하버-보슈 공법이라 불리는 인공 질소 비료 개발법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화학 선생님께서 두 과학자가 공기로 빵을 만드는 법을 개발했다고 하셔서 무슨 소리인가 했었다. 그런데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왜 공기로 빵을 만들었다는 말씀을 하신지 알 것 같았다. 질소 비료의 개발이 농작물의 수확률을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세계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일이 없게 만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같은 기술이 전쟁 무기 개발에도 사용되고, 많은 사상자를 낸 것도 분명했다. 하버와 보슈의 공장이 1, 2차 세계대전 독일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버-보슈 공법은 조금 더 나중에 개발되었어도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잠시나마 들기도 했었다.

  책의 후반부에 쓰인 그들의 여생과 그들의 발견이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다는 것을 읽으면서 과학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과학자의 몫이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도, 인류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버와 보슈는 대단한 과학자이다.  물론, 하버가 전쟁 중 독가스를 개발하고, 살포한 죄를 없앨 수는 없지만, 하버와 보슈의 공법이 인류 역사를 바꾼 연구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와 나의 반 친구들이 같은 교실에 앉아있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들의 위대한 발견 덕분이 아닐까?

 


 

  이후 두 번째 책을 건넸다. 이후에도 학생의 독서 후기도 꾸준하게 업로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도이지만, 끝이 허무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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