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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화학이야기

고등학생을 위한 분광광도법 : (2) 정성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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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을 위한 분광광도법 : (2) 정성분석

- 흡광 스펙트럼의 최대 흡수 파장 -

 

0. 들어가기

  우리는 앞선 글(1)을 통해 장치(분광광도계)가 시료를 분석하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정한 세기의 빛(P0)이 장치의 램프 광원으로부터 출발한다. 빛이 지나가는 경로에 시료가 놓이면, 시료는 빛을 흡수한다. 시료를 통과한 나머지 빛(P)이 검출기에 도달한다.
  장치는 검출기에 도달한 빛의 세기(P0)와 처음 쬐어 준 빛의 세기(P)의 분율인 투과도(T)를 알려준다. 물론, 대부분 장치들이 투과도를 흡광도로 변환하여 알려줄 수 있다. 그런데, 이 흡광도(A) 값이 농도와 완전히 선형적으로 비례하기 때문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분광광도계를 사용하면 좋을까? 분광광도계를 활용하면, 고등학교 수준에서의 자유탐구나 과제연구 퀄리티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막상 좋은 결과를 위하여 분광광도계를 사용하겠다는 마음을 먹지만, 어떤 경우에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면 그 시도가 무의미하다.

 

1. '무언가'를 확인한다는 것

  우리가 새로운 무언가를 합성(synthesis)하든, 시료로부터 무언가를 추출(extraction)하든 최종적으로 얻은 결과물의 겉모습만 보고, "와우! 성공적인 실험이었어!" 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물론, 확연한 색 변화를 갖거나 겉보기 성질이 완전히 달라지면 어느정도 추측하여 기대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근거없이 '이건 내가 원한 그게 맞아!' 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물질 합성 실험으로 대표되는 '아스피린(aspirin)의 합성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실험책 또는 실험 전 직접 작성한 예비 보고서 순서에 따라 '살리실산'과 '아세트산 무수물'을 산 촉매 하에서 반응시킨다. 가열, 건조 등 여차 저차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허연 '무언가'를 얻는다. 아직까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보통은 '이게 우리가 원한 아스피린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한다.

그림 1. 아스피린으로 추정되는 물질 (영상캡쳐)  [출처 및 원본 영상 주소] 유투브-한국화학연구원 KRICT https://youtu.be/_wmBuroKhvc

  그런데, 책에 정제가 필요하다고 쓰여있다. 비록 원리를 모를지라도 책에 쓰인 방법을 참고해 몇 단계를 더 거친다. 정제 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언가2'가 얻어졌다. '무언가2' 역시 '아스피린'으로 추정되지만, '무언가1'보다 더 순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해졌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었을까?

  실험 방법에 오류가 없고 숙련된 실험자가 수행했다면, 주된 생성물(major product)인 아스피린을 얻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아무리 숙련된 실험자라 할 지라도 분석(확인)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그저 '무언가'일 뿐이다.

  결국, 이러한 모호함을 해결해주는 것이 분석이다. 정성분석(qualitative analysis)은 실험자가 얻은 '무언가'의 '특성'을 확인하여 그 정체를 구체화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정량분석(quantitative analysis)은 얻어진 '무언가'의 ''을 구체화한다.

  실험책에는 보통 아스피린 합성 후에, 녹는점을 측정하도록 되어 있다. 측정한 녹는점과 '아스피린'의 녹는점을 비교해서 합성 여부를 확인한다. 만약 측정한 값이 이미 알려진 아스피린의 것과 유사하다면, 아스피린(이 많이 포함된 무언가)을 합성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순수한 아스피린의 녹는점을 사전에 알아야 비교할 수 있겠다. (참고로 아스피린의 녹는점은 135 ℃, 살리실산의 녹는점은 158.6 ℃ 이다.)

 

2. 분광광도계로 '무언가' 확인하기

  그렇다면, 자외선-가시광선(UV-Visible) 분광광도계를 사용해서 '무언가'를 구체화할 수는 없을까? 분광광도계는 우리에게 물질이 좋아하는(흡수하는) 빛에 대해 알려준다. 다음 예를 살펴보자.

Q. 방 안에 막대사탕이 잔뜩 들어있는 통이 있다. 처음에는 통 안에 딸기, 오렌지, 레몬, 사과, 포도맛 사탕이 골고루 들어있었다. 그런데 A ~ D 중 '누군가'가 방에 들어갔다 나온 뒤, 통 안에는 레몬, 사과, 딸기맛 사탕만 남아있었다. A ~ D 중 누가 방에 들어간 것일까?

A : 레몬맛(노랑) 사탕을 좋아한다.
B : 포도맛(보라) 사탕과 오렌지맛(주황) 사탕을 좋아한다.
C : 사과맛(초록) 사탕을 좋아한다.
D : 딸기맛(빨강) 사탕을 좋아한다.


  주어진 정보만을 이용한다면 B가 방에 출입했다고 추론 가능하다. 분광광도계를 통한 물질의 구체화 과정은 위의 사탕 예시와 비슷하다. 물질마다 좋아하는 파장의 빛(사탕의 종류)이 다르다고 생각하자.

  분광광도계 램프 광원에서 다양한 파장의 빛(사탕 뭉치)을 쏴준다. 분석 물질은 좋아하는 파장 영역대의 빛(좋아하는 사탕)을 흡수하고, 나머지 빛(남은 사탕)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나머지 빛(남은 사탕)만 검출기에 도달한다.

그림 2. 흡광도 측정 과정은 다양한 사탕이 들어있는 통에서 좋아하는 맛 사탕을 빼가는 것과 같다.

  앞서 우리가 남은 사탕 종류만으로 B가 방에 출입했음을 추론했듯이, 검출기에 도달한 나머지 빛을 통해 분석물이 좋아하는 빛의 파장 영역대를 추론할 수 있다. 친절하게도 분광광도계는 투광도를 흡광도 그래프로 변환하여 보여준다.

  우리가 합성한 '무언가'가 아스피린임을 확인하고 싶다면, 아스피린이 어떤 빛(어떤 색깔 사탕)을 좋아하는지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 아스피린의 녹는점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우리가 측정한 값과 비교할 수 있고, A ~ D 중에 누가 어떤 사탕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방에 출입한 사람을 추론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비교를 위한 아스피린의 UV-Vis 스펙트럼이 필요하다.

그림 3. 아스피린(aspirin)의 흡광 스펙트럼 이미지 검색 결과

  아스피린은 흰색 고체이다. 겉보기에 색이 없는 물질은 대체로 가시광선(visible light) 영역에서 빛을 흡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글에 'aspirin UV spectrum' 으로 검색하자 수많은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대부분 비슷한 그래프 개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조건과 최대한 비슷하고, 믿을만한 그래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실험실에 샘플이 될만한 정제된 아스피린이 있다면, 검색할 필요 없이 직접 두 시료의 흡광도를 측정하여 비교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3. 흡수 스펙트럼(흡광 스펙트럼) 이해하기

  물질의 흡수 스펙트럼을 검색하거나 측정해보면, 파장에 따른 흡광도 그래프로 결과가 표현된다. 그래프의 축은 장치가 측정한 빛의 파장 영역을, 축은 물질의 흡광도이다. (단, 적외선(IR) 스펙트럼의 경우에는 투광도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그래프의 흡광도 값(y)이 커질수록 해당 파장의 빛을 많이 흡수한다는 뜻이다. 아래의 <그림 4>는 식용 색소 성분 물질 두 가지의 흡수 스펙트럼을 나타낸 것이다. 겉보기 색을 갖는 물질들은 일반적으로 가시광선 영역에서 흡수띠를 갖는다.

그림 4. 식용색소 에리트로신(좌, RED)과 브릴리언트 블루 FCF(우, BLUE)의 흡수 스펙트럼 [그림 출처] https://chem.libretexts.org/Bookshelves/Organic_Chemistry/Book%3A_Organic_Chemistry_with_a_Biological_Emphasis_(Soderberg)/Chapter_04%3A_Structure_Determination_I/4.4%3A_Ultraviolet_and_visible_spectroscopy

  첫 번째는 식용색소 적색 3호의 성분 물질인 에리트로신(erythrosine)의 스펙트럼이다. 스펙트럼은 약 480 ~ 560 nm 부근에서 강한 흡수를 보이며, 특히 524 nm부근에서 최대 흡수(봉우리)를 갖는다. 480 ~ 560 nm 부근은 가시광선 영역의 녹색에 해당한다. 적색 3호는 대체로 녹색 영역의 빛을 흡수한다.

  두 번째 그래프는 식용색소 청색 1호의 성분 물질인 브릴리언트 블루 FCF(brilliant blue FCF)의 스펙트럼이다. 스펙트럼은 560 ~ 680 nm 부근에서 넓고, 강한 흡수를 보이며, 특히 630 nm 부근에서 최대 흡수(봉우리)를 갖는다. 560 ~ 680 nm 부근은 가시광선 영역의 노랑 ~ 빨강 영역에 해당한다. 청색 1호 노랑 ~ 빨강 영역의 빛을 흡수한다.

그림 5. 파장에 따른 색깔과 보색 관계

  그래프를 통해 우리가 겉으로 보는 물질의 색이 흡수하는 빛의 보색(<그림 5>의 색 동그라미 반대편에 위치하는 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그림 6>는 식물에 함유된 엽록소(chlorophyll)의 흡수 스펙트럼을 나타낸 것이다. 엽록소 a와 b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400 ~ 500 nm 부근의 청자색620 ~ 700 nm 부근의 황적색을 잘 흡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엽록소가 녹색으로 보인다.

그림 6. 엽록소의 흡수스펙트럼&nbsp;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lorophyll_ab_spectra-en.svg

4. 정리하면

  분광광도계는 우리에게 물질이 흡수하는 빛에 대한 정보를 준다. 색을 갖지 않는 물질은 보통 가시광선 영역에서 흡광도를 갖지 않는다. 이런 경우 자외선 영역이나 적외선 영역에서 빛을 흡수할 수 있다.

  반면, 색을 갖는 물질은 대체로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흡수한다. 물질의 겉보기 색은 흡수하는 빛의 파장 영역에 해당하는 색상과 보색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최대흡수파장(λmax)을 알면 대략적인 겉보기 색을 예상할 수 있다.

  분광광도계는 분석 물질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방법 중 한 가지로 사용될 수 있다. 그것도 모든 상황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비교할 수 있는 표준 시료가 있거나 신뢰도를 갖춘 파장-흡광도 그래프가 있는 경우에만 어느정도 가능하다.

  흡광도 측정만으로는 물질 확인의 강력한 근거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다른 물리적 특성을 함께 확인하거나 몇 가지 분광학적 방법을 함께 확인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는 것이 좋다. 내가 레몬맛 사탕을 제일 좋아하는데, 와이프도 레몬맛을 제일 좋아한다. 사탕 뭉치만을 통과시켜서는 와이프와 나를 구별할 수 없다. (물질을 구체화(확인)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NMR과 MASS의 조합이다.)

  분광광도법이 물질을 확인하는 과정에 단독으로 사용되기에는 분명한 제한점이 있지만, <그림 7>과 같이 겉보기에 색 차이를 보이는 물질들 간의 비교에는 흡광도 측정이 효과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 물질들 간에 색깔이 달라보이는데?" 정도에 머무르겠지만, 흡수 스펙트럼을 측정해보면, 파장에 따른 흡광도 차이가 분명히 수치적으로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림 7. Alq3와 유도체(2-methyl, 5,7-dichloro, 5-chloro, 5,7-dimethyl) - [UV325nm, CH2Cl2 용액]

 

  만약, 학교에 분광광도계가 있고, 장치 사용법을 먼저 익히고 싶다면, 시중에 나와있는 식용 색소를 이용하여 연습하도록 하자. 색상이 비교적 다양하여 색소별 그래프 비교가 쉽고, 실습 후 뒷처리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뒤 이어 소개할 정량분석 또한 식용 색소를 이용해서 비교적 간단히 연습할 수 있다.

  연습을 통해 장치 사용법을 익혔다면, 자신들의 과제 연구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자.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정성분석편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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