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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오늘 카페에서 있었던 일 (feat. 각자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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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1

 

  주말에 집에만 있기에 따분하여 모처럼 가족들과 시장 구경을 하러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더워서 더이상 걸을 수 없다는 아이들의 말을 핑계삼아 카페인 충전소로 들어갔다. 아침에 커피를 챙겨마시지 못한게 타격이 있나보다. 읍 단위에 흔치 않은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 맛은 오랜만이다.

  둘째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와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큰 컵으로 두 잔 시켰다. 이미 주문을 마쳤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들 음료가 없다. 뒤늦게 청포도 에이드 하나를 추가로 주문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둘째는 형아의 청포도 에이드를 한 입 먹더니 '우웨~엑' 하더니 맛이 별로란다. 첫째는 호로록호로록 잘도 마신다. 두 아들 취향 참~ 다르다.

@pixabay by pastel100


  카페에 사람이 별로 없긴 했지만, 그래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면서 말이다.

  밖에서 햇빛 아래 걷느라 지쳤었는데 그저 시원한 카페에 들어와 좋은건지 둘째 목소리가 살짝 들떠있다. 주위 사람들에 피해가 될까싶어 눈치가 쪼금 보였다. 적당히 앉아 땀도 식혔고, 커피도 거의 다 마시고, 충분히 쉰 것 같으니 슬슬 정리하여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카페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들어오셨다. 할아버지는 곧장 입구 바로 옆의 창가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 손님에게 다가가서 물으셨다.

- 할아버지 : "이봐요, 거 이거는 핸드폰 같은 거요?"
- 손님 : "네? 이거요?"


  할아버지는 손님 앞에 놓여있는 아이패드를 가리키며 물었고, 손님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한 듯 대답했다. 

- 손님 : "아... 네네.."
- 할아버지 : "그럼, 전화도 되고, 인터넷도 되고 뭐 그런거요? 같은 거요?"
- 손님 : "아.. 아니요. 전화가 되는 건 아니고요..."
- 할아버지 : "아, 전화는 아니고, 내가 나이가 들고 그러다 보니까 핸드폰은 화면이 작아서 잘 안 보이고 그래서 그러오. 그런 거는 어딜 가야 살 수 있는 거요? 삼성 이런데 가면 되는 거요?"
- 손님 : "아... 이건 삼성은 아니고요..."
- 할아버지 : "그럼 뭐요?"
- 손님 : "애플이요..."
- 할아버지 : "애플? 그건 뭐 어디 있소? 어디로 가면 되는거요?"
- 손님 : "아... 그게..."


  뭔가 궁금한 것이 있고,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살짝 무뚝뚝하게 질문을 쏟아내는 할아버지와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데 나름 설명을 해보자니, 시작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손님에게 매장 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 때, 서둘러 카페 사장님께서 다가오셨다.

- 사장님 : "할아버지, 여기 동네는 애플 매장이 없어요. 옆 동네까지 가셔야 해요. 그리고 갑자기 이러시면 안 돼요."
- 할아버지 : "아, 거 참 내가 뭘 했다고 그러오. 그냥 묻기만 했구먼! 물어보는 게 뭔 잘못이오!"


  사장님의 개입이 불쾌하셨는지, 할아버지의 언성이 다소 높아졌다.

- 사장님 : "갑자기 들어오셔서 매장 손님께 다짜고짜 막 그러시면 안 돼요."
- 할아버지 : "내가 뭘 잘못했다 그러오!"
- 사장님 : "손님께서 불편하시잖아요! 이제 일 다 보셨으면, 나가주세요! (어쩔 줄 몰라하는 손님께) 죄송해요. 계속 계세요. 앉아계셔도 돼요."
- 할아버지 : "난, 못 나가! 내가 왜!"


  언성은 높아질 대로 높아지고, 사장님도 상황이 잘 해결되지 않아서인지 마음이 다급해보였다. 결국 실랑이 끝에 할아버지가 어찌어찌 밖으로 나가시고, 상황은 정리되었다. 매장 다른 직원들이 난처한 손님을 배려하여 안쪽 좌석으로 옮겨드렸다. 그 사이에 앞서 주문한 케이크 포장이 끝났다.

  우리는 주문했던 케이크를 받아 정리하고 나가려던 찰나였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어수선한 매장이 불편하여 서둘리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와이프가 나에게 카페에서의 이야기를 꺼냈다.

- 와이프 : "당신 케이크 받으러 카운터 갔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 줄 알아?"
- 나 : "응? 아까 카페에서? 그 할아버지 들어왔을 때? 무슨 생각?"
- 와이프 : "당신, 케이크 받으러 간 것만 아니었으면 가서 좀 도와드리라고 했을 거야. 다들 처한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됐거든. 그런데, 좀 더 매끄럽게 마무리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았어." 
- 나 : "그랬을까? 하긴 뭐, 각자 입장이 너무나도 그랬어. 너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 와이프 : "할아버지 주변에는 그런 관련된 것으로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는 뜻일 테고, 처음 보는 낯선 젊은이에게 대뜸 말을 걸어야 할 정도로...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명확하게 잘 아는 것도 아니니, 질문이 매끄러울 수도 없고... 우리 아버님이야 그런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당신한테 다 맡기고 부탁할 테니까."
- 나 : "그치. 그 손님도 다짜고짜 질문은 쏟아지는데, 명확하게 자세히 답해줄 수 없는 상황에 갑자기 놓인 것도 꽤나 난처했을테고, 사람들 시선은 주목되는데 쫓기듯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하나 고민되었을 테고..."
- 와이프 : "사장님 입장에서도 그간 별별 손님, 별별 상황들을 다 겪으셨을 텐데, 아무런 대응 없이 냅두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분위기상 마구잡이로 쫓아낼 수도 없는 거고."


  우리는 모른다. 각자의 뒷 사정이 어땠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할아버지가 밖에서 주저주저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서툴게 물음을 던진 것이 억울한 상황일수도, 아니면 별 고민없이 그냥 즉흥적으로 행동했을 수도 있다. 손님은 갑자기 너무 당황했을 수도, 할아버지에게 무얼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할지 막막했을 수도, 상황 자체가 겁이 났을 수도 있다. 카페 사장님 역시, 매장을 운영하며 과거에 어떤 비슷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고, 당시 상황에서 특히 염려되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직접 대화를 나눠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저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끝을 열어둘 뿐이다.

 


 

  그들 중 누가 옳고, 누구는 그르며, 누구는 잘했고, 누구는 잘못했다는 식의 논쟁은 싫다.

  물론, 그게 편한 방식이긴 하다. 특히 내가 관련되어 있는 일이라면, 우리 뇌는 그러한 방식으로 잘 작동한다. 어떤 상황에 놓였건 나는 옳고, 상대방이 그른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작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상황이라면, 의식적으로 균형을 지키려고 한다. 그 대상이 학생들일 때 그렇고, 업무적인 처리가 필요한 경우에도 그렇다.

전차 카드 [출처]

  

  며칠 전, 동료 선생님께서 재미삼아 타로점을 봐주셨는데, 해당하는 카드는 '전차(The Chariot)'였다. 가운데 젊은 왕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균형을 항상 신경쓴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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