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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원격 수업이 대면 수업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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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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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60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우리 집도 그 확률을 피하지는 못했다. 내가 혹시 슈퍼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은 첫째가 확진받은 지 불과 이틀 만에 깨졌다. 지난 목요일 첫째를 시작으로, 금요일 둘째, 토요일 나, 일요일 와이프를 끝으로 네 가족이 가지고 있던 불확실함과 공포는 확실함으로 바뀌었다. 두 아이가 고열로 인해 해열제에 의존하여 하루 고생한 것을 제외하고는 나름 건강하게 위기를 넘겼다. 바이러스와 엎치락뒤치락 뒹굴거리며 주말을 보내고, 드디어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 3월 14일 발표된 새로운 지침에 따라 교사는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학교에 출근한다. 유증상이더라도 자가진단키트 1줄이면 출근하고, 가족 중 확진자가 발생해도 나만 괜찮으면 출근 가능하다. 아- 물론, 확진되어도 출근한다. 격리로 인해 학교로 직접 가지는 못하고, 재택근무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연스레 교육청 VPN을 실행시키고, 8시 30분에 교육청 메신저에 접속해서 내가 출근했음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VPN을 실행하면, 교육청 업무포탈 페이지 외의 일반 인터넷 페이지에 접속할 수 없기 때문에 검색과 수업에 접속할 수 있는 별도의 PC 환경이 필요하다.)

  아프면 병가를 내고 쉬어도 된다고는 하지만, 안그래도 많은 확진자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학교 현장에, 다른 동료 선생님들께 수업을 떠넘기듯 부탁드리고(다른 방법이 없으니...) 부담을 드린 채 쉬는 것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 역시 이번 주에 몸이 허락하는 한 재택근무 중 원격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학기초부터 확진으로 격리된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교실 수업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는 있었다. 학교마다 사용하는 플랫폼은 다르겠지만,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영상통화 또는 회의 플랫폼을 이용하는데, 우리 학교는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마다 구글 MEET 코드를 만들고, 학생들은 교실을 옮겨 다니듯 코드를 바꾸어가며, 수업이 이루어지는 온라인 공간에 접속한다. 학교에 등교한 학생들과 격리된 학생들을 동시에 참여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격리 중 온라인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출석은 인정되기에 수업 참여 유무는 철저하게 학생들의 선택이다.)

 

1.

  그런데 입장이 바뀌었다. 학생들은 교실에 있고, 내가 집에 있다.

  교실에 들어와야 할 선생님이 거대한 스크린에서 허둥지둥대며, 버퍼링 속에서 입을 끔뻑거린다. 마이크의 여러 잡음들도 섞여 들어오는데, 난데 없이 내복차림의 꼬꼬마들이 난입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느끼는 수업 초반의 대형 스크린 속에 빠진 선생님의 낯선 광경이 주는 재미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으며, 화면 공유를 통해 보이는 수업 자료는 분명, 평소 보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과 구성이지만 무언가 어색하고, 전달되는 정보량도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평소보다 더 졸린 것 같고, 집중하기 어렵다. 랜선으로는 코로나 감염이 이루어지지 않듯 랜선으로 교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뉘앙스가 잘 전달되지 않는 듯하다.

원격 수업은 학생도, 교사도 어렵다. [출처] Pixabay @zapCulture


  수업을 하는 입장에서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웹캠 너머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인터넷 속도와 웹캠 화질에 따라 흐릿흐릿한데, 힘들어 보이는 모습을 보아도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이름을 불러 집중하기 힘든 상황은 당연한 것이라며 격려를 하거나, 잠깐 수업과 상관없는 딴소리로 분위기를 겨우 환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미래 교육을 말하면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원격 수업, 메타버스로 일컬어지는 가상공간, VR, AR 등을 활용한 수업 등을 운운하지만, 그 공간 속에서의 교사-학생 간 상호작용이 대면 수업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다면, 현재의 교실을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

  화학에서도 상호작용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입자와 입자가 서로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자연스러운 끌림과 밀어냄으로 표현된다. 원자들 혹은 이온들 사이에 서로를 강하게 인식하여 끈끈한 관계가 맺어지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면, 이를 화학적 결합이라 표현한다.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입자들 사이 상호작용은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며, 보통 다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온전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고, 이를 통해 상호작용하라고 환경을 구축해준다 해도, 그 속에 존재하는 입자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와의 차이를 느낀다면, 그 상호작용은 분리 전과 같을 수가 없다.

'가상 현실'은 진짜 현실에서의 온전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낼 수 없다. [출처] Pixabay @Pixels


  원격 수업, 온라인 클래스룸,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한 교사-학생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쩔 수 없는 현재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괜찮은 해결책은 될 수 있겠지만, 미래 사회에서 꿈꾸는 이상적인 교육, 현재의 교실에서 갖는 문제점을 대체하는 교육으로서 자리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미래 기술이 발달하여, 내가 이곳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생동감이 구현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코로나 상황이 불거지면서 미래 교육으로의 나아갈 가능성을 엿봄과 동시에 교사와 학생 사이에 보이지 않던 상호 작용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아침 시간에 잠깐이지만, 대면하는 조회 시간이 가진 힘, 수업 중에 직접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과 각각의 표정 등이 직접 전달될 때 의미가 있고,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분리된 이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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