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이스북을 지웠다. 휴대폰 두 대, 아이패드, 데스크탑의 즐겨찾기 링크도 지웠다. 마음만 먹으면 다시 설치하고, 로그인할 수 있지만 그래도 멀리해야 할 것 같아 지우기만 했다. 메시지 어플은 남겨두었다. 과거의 글이 추억이 될까 싶어서, 혹시나 지난 학생들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질까 싶어서 과감하게 탈퇴까지는 못했다. 어쨌든 블로그를 제외하고, 개인 SNS는 하나만 남았다.
사실 몇 주 전에도 페이스북을 지웠던 일이 있다. 요즘 페이스북을 통해 내 일상을 공유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기에도 블로그가 더욱 편했기에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그저 여러 사람들의 글(보다 광고가 더 많아)을 보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며칠 참지 못하고 다시 페이스북을 설치했다. 이 글을 쓰는 목적도 미래의 내가 다시 페이스북을 설치하려는 마음이 들 때, 조금이라도 고민하게 하기 위함이다. (가끔 로그인 하는 것 정도는 허락을...)
2.
페이스북 피드에는 정말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 내가 등록해놓은 관심사와 자체 알고리즘은 웃음코드를 저격하는 영상부터, 사회적 이슈, 관심 있는 상품까지 다양하게 추천해준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요즘, 페이스북 속 다양한 글을 읽는 행위는 (멍 때리며 유투브나 넷플 보는 것, 게임 다음으로) 너무 재밌다.
특히, 내가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나의 최애 프로그램이 '알쓸신잡'인 이유와 비슷하다. '알쓸신잡'의 대화를 살펴보면, 하나의 주제(대상)가 등장했을 때, 작가의 시선, 건축가의 시선, 요리평론가의 시선, 작곡가의 시선, 과학자의 시선으로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는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행위만큼 나에게 신선함을 주는 것도 없다. 어떤 생각은 비슷하기도, 어떤 생각은 대립되기도 한다. 대화 속에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생각이 정리되기도, 변화하기도, 공감을 통해 확고해지기도 한다.
내 피드 속 다양한 글들이 나에게는 그랬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직접 대화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혼자 글을 읽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었다. 추천해주는 책을 구입하기도, 공유한 기사를 읽기도,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내 생각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왠지 모를 안도감도 든다. 직업과 나이, 사는 곳과 처한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와 의견이 비슷하다는 사실에 공감 버튼을 누르고 자연스럽게 추종(follow)한다. 업로드되는 글을 꾸준히 읽으며 (나 홀로) 친분을 쌓는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논리와 유머를 갖춘 글로 시원하게 풀어낸 것을 보면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사람마다 생각은 정말 다양한데 그중 일부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또 그중 일부는 이를 정말 멋지게 표현해낸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런데 마냥 좋기만 할 것 같은 이 공간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페이스북과 멀어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3.
개인적으로 나는, 균형(balance)의 가치를 (지나칠정도로) 중시한다. 그런데 내 피드가 균형을 잃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 입맛에 맞는, 내 생각과 비슷한 글에 많이 노출될수록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려 하기보다 "그래,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에 만족하고, 머물러 있는 것을 느꼈다. 어떠한 주장에 대해 의심하는 일이 적어지고, 그저 믿어버리는 편안함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느낌은 이 때문이었나 보다.
분명한 주장을 담고 있는 글을 읽을 때, 균형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이해(단순 공감 말고)하려 해야 한다.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고, 어떤 생각과 근거를 통해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내 주장의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를 수시로 경계해야 한다. 철저한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글을 읽은 이들의 반응(댓글)이 이런 면에서 중요하다. 글에 대한 다양한 의미있는 후기(피드백)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적극 동조할 때, 누군가는 적극 비판해야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집단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멍청한 결정을 내리곤 한다."는 조직론에 관한 수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무수한 비방과 분별없는 공감의 댓글(후기) 속에서 논리를 갖춘 반대 의견을 찾는 것도 꽤나 고된 일이고, 지치는 일이다. 내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글쓴이가 비판받으면, 마치 내가 공격받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보내다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이런(내) 관점에서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런(상대방) 관점에는 저럴 수도 있다."에 도달했다. 며칠 동안 머리가 깨질듯 생각하고, 고민한 것에 비해서는 꽤나 허무한 결론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내 나름의 균형을 찾았다. 그리고 당분간은 균형을 잃고 치우치고 싶지 않아 페이스북을 멀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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