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신문 기사를 하나 읽었다. 팔로우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글을 읽었다. 와이프와 교육관에 관한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정리되지 않은 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답답하다.
1.
기사를 읽었다. 제목은 "코로나 학습 격차, 중위권이 없다."이다.
기사는 코로나로 인한 원격 수업의 실시, 그로 인한 학습 격차의 증가를 다뤘다. 학습 결손 불안함 해소를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는 학부모들. 공부량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떨어졌다는 학생의 사례. 중위권 학생들이 소멸했다는 현장 교사들의 의견. 가정 형편이 상층에 속하는 가정일수록 학생들 케어에 적극적이라는 내용 등이었다. 그리고, 기사는 다음 글과 함께 마무리된다.
신나민 동국대 교수(교육학)는 "학습 격차는 '학습 성취 격차'가 아니라 '학습 동기'의 격차"라고 정의한다. 아이들의 학습 동기가 비슷할 때, 부모나 교사가 이끌어주면 잘 따라가요. 그런데 지금은 (부모나 사교육 없이) 오로지 교사한테만 의지했던 아이들의 힘이 떨어졌어요. 이럴 땐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려 하지 말고 계속 (공부)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해요. '왜 공부해야 하는가?' '왜 일정 시간에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요. 어찌 보면 원격 교육은 학습 격차 문제에 죄가 없어요.
읽는 내내 고구마를 한 움큼 삼키고, 목이 메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기사 말미의 인용된 말 덕분에 조금이나마 풀렸다. 원격 수업에서의 학습 격차는 "성취 격차"가 아니라 "동기 격차"이다. 내 생각도 그렇다.
2.
요즘 정치 관련 글은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교육 관련 기사나 글은 피할 수가 없다. 직업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휴직을 하고, 코로나 교육 현장에서 직접 치열하게 터져 본 경험이 없기에 방구석 투덜이에 지나지 않지만, 현장감 떨어지는 교육부의 헛발질이나 그저 자극적인 기사들이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팔로우하고 있는 한 선생님이 공유한 글을 통해 교육부에서 보도자료를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읽어보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의 학사 운영 및 원격수업 질 제고 관련 교육부-시도교육감협의회 간담회 주요 협의 및 결정사항(교육부, 9.15.)"
뭐, 대충 전국의 시도교육감과 교육부 장관이 모여 결정한 원격수업 질 제고에 관한 내용이다.
[교육부 보도자료]
- 교육부와 협의회는 원격수업 운영 방식과 관련하여, 교사의 보다 각별한 관심과 사랑, 상호작용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여 원격 수업의 질을 높이고, 교사-학생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 이를 위해, 우선 원격 수업 기간 중 모든 학급에서 실시간 조-종례를 운영한다. 교사는 실시간 화상 프로그램 또는 SNS 등을 활용하여 학생의 출결 및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당일 원격수업 내용 개요 등을 주제로 소통한다. 부득이하게 미참여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전화 또는 개별 SNS 등을 통해 조종례 내용을 전달하고, 특이사항을 파악한다.
- 또한 원격수업 운영 시 학생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비율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로 하였다. 실시간 쌍방향 화상 수업 외에도, 콘텐츠 활용 수업 중 채팅 등을 통해 학생에게 피드백하는 수업까지 포함하여,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할 예정이다. ※ 주 1회 이상 실시간 쌍방향 수업, 쌍방향 피드백 실시
- 원격수업 시 1 차시당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등학교 50분의 교육활동이 운영될 수 있도록 유의할 것도 함께 당부하였다. ※원격 수업 유형에 따라 과제 수행 및 피드백 시간, 실시간 쌍방향 화상 수업 준비 시간 등을 포함하여 단위 수업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
- 아울러 원격 수업이 1주일 내내 지속될 경우, 교사가 주 1회 이상은 전화 또는 SNS 등을 통해 학생, 학부모와 상담하도록 한다.
후략
이건 뭐... 말이 안 나온다. 짧게 정리하자면,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원격 수업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사의 사랑, 상호작용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있다. 그래서 원격 수업의 질을 높이고 교사-학생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건데, 교사들에게는 이렇게 하라고 할 거다.
쌍방향 조종례, 쌍방향 수업 확대(주 1회 반드시), 정규수업시간 꽉꽉 채울 것, 학생 학부모 상담 주 1 회
정말 얼굴 맞대고 질문하고 싶다.
1) 정말 학부모들은 교사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 상호작용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의 차이로부터 드러난 믿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이들의 민낯을 봐서 그런 것은 아닌가? 우리 애한테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해서 괜찮냐고, 공부 잘하고 있냐고 물어봐주세요. 조회 시간, 종례 시간에 쌍방향으로 우리 애 이름 한 번 불러서 확인해주세요. 정녕 이걸 원하는 것인가? 조종례를 쌍방향으로 하면 원격 수업의 질이 높아지고, 교사-학생 간 소통이 강화되는가? 그래서 모든 학급에서 실시간 조종례를 운영하라고 "보도 자료"를 내놓은 것인가?
이래도 학생, 학부모들이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문제 제기를 하면, 나중에는 조회 시간에 종례 시간에 아이들이 제대로 들었는지 한 명씩 반드시 이해 여부를 확인하고 발표까지 시키라고 지시할 기세다. 교직 생활하면서 조회 어떻게 하라 종례 어떻게 하라는 장관님 지시받아보기는 처음이다.
2) 쌍방향 화상 수업, 콘텐츠 활용 수업 중 실시간 채팅이 원격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이 맞나? 내가 그분들만큼 고차원적인 생각을 못하는 것인지 경험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칠판 앞에서 색색 분필로만 수업하는 온라인 일타 강사님들 지금부터 수강생 끊길까 걱정을 해야겠다. 그런 안일한 구시대적인 일방적인 강의 법만으로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조만간 일자리를 잃으실 수도 있으니 반드시 쌍방향으로 실시간으로 소통하시면서 학생들 이해와 만족도를 확인하셔야겠다. 자녀의 원격 수업 질을 걱정하여 직접 돈을 내시는 분들은 쌍방향 소통을 중시하는 분들이니까.
물론, '모든' 교사가 원격 수업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옹호를 할 생각은 없다. 교사 집단도 이 사태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는 다양하다. 타성에 젖어 이 모든 새로운 경험이 귀찮아 수업을 방치하고 있는 교사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미숙하여 남들보다 어설픈 교사도, 기기 활용에 능숙한 옆 선생님께 하나씩 묻고 배워가면서 새로움에 재미를 느끼고 열정 폭발하는 교사도, 뚝딱뚝딱 프로페셔널하게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능숙히 대처하고, 공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교사도 있다. 당연히 교사 집단도 다양한 사람이 구성하고 있으니 개개인의 수업 역시 다양하고, 차이가 존재한다. 아이들은 이런 다양함 속에서 차이를 배우고, 잘못된 어른은 비판하고, 자신도 돌이켜보며 반성하고 배운다.
초등, 중등, 고등 교육에서 요구하는 바가 다르고, 과목별로 필요한 것 또한 다르다. 원격 수업으로 인해 누군가는 조금 더 곤란해졌을 수 있고, 누군가는 조금 더 수월해졌을 수도 있다. 연령에 따라, 수준에 따라, 환경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누가 제발 교육부에다가 원격 수업의 좋았던 점, 느낀 점도 같이 좀 회의 자료에 첨부해주길 바란다. 현장 선생님들의 노고와 말도 안 되는 지휘라인의 지시에도 어쨌든 현장 교육 지키겠다고 이리저리 학교 교육과정 수정하느라, 방역하느라 허덕대고 있는 것도 꼭 좀 전해주길 바란다. 어떤 상황에도 학교에 불만이 가득한 외부 민원에만 집중하면 도저히 이놈의 학교와 교사들은 존재의 가치 조차 없는 기관이자 사람들이다.
본인들의 능력과 부족한 경험으로는 도저히 구체화할 수도 없을 "원격 수업의 질 향상" 따위를 회의 탁자 앞에서 "이렇지 않을까? 이러면 되지 않을까?" 생각만으로 마치 해결책을 찾은 듯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치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백종원 님의 만능간장처럼 만능 치트키가 될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을 거두었으면 한다. 쌍방향 수업이 실제로 교육적 효과가 우수하고, 설령 그걸 교육부가 적절히 눈치챘다고 할지언정 그 판단은 현장 교사가 할 수 있도록 남겨두어야 한다. 원격 수업을 쌍방향으로 진행하는 것도, 콘텐츠 활용 수업으로 진행하는 것도 결국은 교사가 판단해야 할 일이다. 교사들끼리 치열하게 논의하고, 학교 환경에 맞추어 최적의 교육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학교가 그런 집단이라고 믿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가르칠지 방법까지 교육부에서 다 정해줄 거면, 뭣하러 힘들게 고시생들 임용고시 1차, 2차 나눠서 수업 실연까지 시험 보나?
3.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와이프가 질적 연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와이프와 나는 지금껏 질적 연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둘 다, "자고로 연구는 그래프 나오고, 표 나오고 그래야 뭔가 연구스럽지."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이과적 사고의 사람이다.
어쨌든 현재 나는 와이프의 질적 연구 (연습) 대상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나의 성장 환경, 교육관, 교사로의 경험과 그 경험이 갖는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한 번에 30분 정도 진행되는데 평상시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자주 나누기에 새롭다 할 것은 없다. 그래도 와이프가 내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자 장점이다. 어색 어색하게 존댓말로 나에게 질문하는 것만 빼고는 그 시간이 좋다. 내 교사 경력을 돌이켜보고, 내가 추구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미리 말하지만, 와이프와 나는 교육관이 정말 정말 다르다.
교실에는 20 ~ 30명의 학생들이 있다. 당연히 이들의 학습동기와 의욕, 기초 성취도, 학습 능력, 가정환경은 다양하며, 교사는 '어느 지점'을 정하여 무게 중심을 두어 수업한다. 기준은 교사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나는 다른 요인보다 "하려는 아이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동기가 외재적이든 내재적이든 상관없다. 해보려는 마음이 1이라도 있으면 된다. 교사의 갖은 노력과 구걸에도 하지 않겠다고 철벽 치는 아이들 때문에 교실의 다른 아이들이 피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유지시키는 데는 "스토리"와 "비유"라는 도구를 주로 활용한다. 피식하게 만드는 과장된 몸짓과 원맨쇼, 어이없는 유머 등은 덤이다. 기본적으로 학습 동기를 갖게 한 뒤에, 이를 꾸준한 학습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학습 내용의 본질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화학은 마술 같은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한 과목이 아니다. 어려운 과목이다. 나는 화학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어렵다.
반면, 와이프는 의욕이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학생의 동기가 유발되었음을 수업 참여도(학생의 행동)로 판단한다.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고, 써볼 수 있고, 찾아볼 수 있고, 어떻게든 움직이고, 무언가 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런 아이템을 끊임없이 찾는다.
나는 이론적 배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단순 안내형 탐구는 단순 체험일 뿐, 본질적인 의미에 도달하기엔 어렵다고 생각하는 반면, 와이프는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보는 것보다는 해보는 것이 보다 잘 체득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생각한다.
둘 중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내 고집일 수도 있지만) 학생에 따라, 환경에 따라, 주어진 시간에 따라, 가르치는 내용에 따라 다를 뿐이다. 교사마다 선호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적용되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교사 개개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교사가 이러한 결정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만의 철학(교육관, 수업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남들이 해서 좋았던 교수학습 방법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일 수 있다. 내가 들었을 때는 무지하게 웃겼던 이야기도 막상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었을 때, 별로 웃기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학생들 간 차이가 존재하는 교실에 차이를 갖는 교사가 들어가서 모두에게 딱 맞는 교수 학습 방법으로 수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A 상황에는 B 교수법이, C 상황에는 D 교수법이 최적이다 따위의 물리 규칙, 수학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 거꾸로 수업(flipped learning)이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꽤나 핫(hot)했다. 마치 거꾸로 수업이 죽은(잠든) 교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처럼 매체에서 소개되었고, 교사 연수에 빠지지 않는 인기 콘텐츠였다. 전국에서 이를 배우고, 시도해보는 교사들이 늘어갔다. 정말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율적으로 연수를 통해 새로운 것을 접하려 하고,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시도하려는, 자기 수업을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교사가 많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교수법이라 하니 별생각 없이 참여하는 교사도 있었다. 그래도 그 참여 자체는, 개인의 시도 자체는 바람직한 것이니 칭찬해야 하지 않은가.
사실, 거꾸로 수업이 잘 적용되는 환경이 있고, 잘 적용되는 아이들이 구성이 있고, 잘 맞는 교과가 있고, 거꾸로 수업에 잘 맞는 교사가 있을 뿐이다. 그 수업 방법이 만능이 아니다.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내 교육관에 맞는 적절한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와이프와 나의 교육관이 달라도,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교실 내 학습 격차다. 학습 격차가 큰 교실은 학생 입장에서도, 교사 입장에서도 어렵다. 교사가 수업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학습 격차도 그중 하나이다. 서로 다른 교육적 견해 속에서도 가치 있는 대화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 역시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 향상, 학습 격차 해소에 대한 공공의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습 격차는 완전히 해소될 수 있을까? 교실 속 학습 격차를 발생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나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려 한다. 어떠한 이론이나 배경이 없는 개인적인 생각이자, 학술적으로도 근거 없는 뇌맘대로 분류다.
기회 격차, 동기 격차, 성취 격차
기회 격차.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해소 가능한 격차라고 본다. 국가가 관심만 가지면 손쉽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다. 의지만 있다면, 재정적으로, 환경적으로,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충분히 보완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이다. (제발 현재의 학생 선택형 교육 과정과 학점제 도입도 그런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해줘.)
동기 격차. 학생들 개개인이 가진 학습 의욕의 차이다. 과연 해소 가능할까? 교사로서 학습 의욕이 없는 아이들의 동기를 유발하고자 수업 방법을 찾고, 자료나 매체를 활용하여 의욕을 끌어올릴 수 있다. 교사의 역할은 부족한 학습 의욕을 높이는 것이지 궁극적으로 학생 간 의욕 격차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학생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의욕의 격차를 어떻게 외부인이 해소시킬 수 있는가? 또, 공교육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상위 개념을 학습하길 바라는 아이들의 의욕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려서라도 격차를 좁혀야 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완전한 동기 격차 해소는 불가능하고, 격차 해소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교사의 역량으로 약한 의욕의 아이들의 의욕을 조금씩 증진시키고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사를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성취 격차. 완전 학습이란, 약 95 % 이상의 학생이 목표한 성취 수준에 도달한 경우를 말한다. 한 학급의 20~30명의 학생이 완전 학습에 도달할 수 있는가? 있다. 물론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학생 개개인에 대해 완벽하게 신경 쓸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사교육으로서 과외가 나름의 입지를 갖는 이유가 이것이다. 개개인에 학습 능력에 맞춰 속도와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교육부가 학생들의 성취 격차의 해소, 모든 학생의 완전 학습에 도달을 교육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면,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예비 교사도 당연하게 여기는 내용을 교육의 컨트롤 타워인 교육부가 모를 리가 없다. (모르면 학교 현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것이고, 교육 전문성이 없다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다.) 그런데 교사당 학생 수 운운하고, 출생률 감소를 운운한다. 이건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거다. 혹여나 대중에게 안다는 것을 들키면, 앞으로 교사 수를 줄여 예산을 세이브할 방법이 없어진다. 따라서 끝까지 모른 척할 거다. 어쨌든 국가가 학생들의 성취 격차를 줄이겠다는 목표 의식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성취 격차는 개인적인 초기 성취도와 학습 역량(타고난 성향) 등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어떤 학생은 간단한 설명에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나같이 세세하게 따지기 좋아하고, 이해의 흐름을 중시하는 학생은 시간도 걸리고, 사소한 학습 내용을 받아들이는데도 오래 걸린다. 나 역시 학습에 효율적이지 않은 뇌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차이를 가진 아이들이 하나의 교실에 모였는데, 당연히 정해진 시간이 흐른 뒤 측정(평가)하면 성취 격차가 발생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교육적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완전 학습을 목표로 하라고 한다. 그래 놓고, 모두가 100점 받고, 높은 평균이 나오면, 문제의 변별력을 운운하며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학생 모두가 완전 학습에 도달하도록 하는 우수한 수업을 했다고 평가하지 않는가?
왜 학습 격차 해소를 운운하면서 시험 성적은 언제나 정규분포 곡선을 그리길 바라는 것인가? 완전 학습을 버리든지 성취 격차 발생을 인정하던지 둘 중에 하나만 하자.
개인적으로 국가는 수업은 현장 전문가인 교사에게 맡기고, 학생들의 기회 격차를 줄이는데 집중했으면 한다. 교사들이 현장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가 역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육 현장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바란다. 현장 교사들은 개인의 교육 철학 속에서 수업이라는 도구를 통해 학생들의 동기 격차와 성취 격차를 줄여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국가 단위 교육 과정은 성취 격차의 해소도 좋고, 완전 학습의 도달도 좋으니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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