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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우리는 '무엇을' 검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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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직 이후 블로그 활동이 잦아지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지에 관심이 생겼다. 다른 플랫폼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비교가 어렵지만 티스토리는 방문자의 유입 경로를 3 가지로 구분해서 보여준다. 검색을 통한 유입, SNS을 통한 유입, 기타(직접 유입 포함) 유입. SNS을 통한 유입은 대부분 내가 공유한 링크를 통해 지인들이 방문한 것이기에 글을 공유하지 않는 날은 SNS를 통한 유입이 거의 없다.

  블로그 방문자 대부분은 검색을 통해 유입된다. 누군가 포털 사이트에서 궁금한 내용을 검색하면 관련된 내 글 이 노출되고, 이를 클릭하면 블로그 방문자 수가 1 증가한다. 사용한 검색 엔진과 검색어는 다양하겠지만 검색을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에 상응하는 정보를 기대하며 클릭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 분들을 중에는 블로그에 별 내용이 없어 실망하시는 비율도 꽤...많지...않을...) 나 역시도 궁금한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이런 과정을 거친다.

 

 

티스토리 블로그 관리홈

 

 

  우리가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공간을 찾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갑자기 접한 영단어의 뜻이 생각나지 않을 때 책장 어딘가에 꽂힌 영어 사전을 찾지 않고, 그저 검색창에 관련 단어를 입력한다. 혼동하기 쉬운 맞춤법이나 처음 보는 외국어 번역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검색을 통해 접한 단어의 뜻, 올바른 맞춤법, 번역된 결과물 등이 머릿 속에 남는 것은 검색을 했다는 행위와 별개의 문제이다. 깨달음이 깊어 오래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 순간의 "아하!"만을 남기고 금세 사라질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같은 상황이 발생 했을 때 재차 검색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아아~ 이거 알았었는데?"하는 안타까움은 덤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는 모습 자체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뇌 용량은 한계가 있는데, 개인을 향해 쏟아지는 정보는 과거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때문에 나에게 필요하지만 형태가 단순하거나 찾는 수고가 크지 않은 것들은 굳이 뇌에 저장하기보다 다른 곳을 이용한다. 지인의 연락처는 휴대폰에, 계좌번호는 은행 어플리케이션에 따로 저장되어 있다. 필요할 때 찾아 사용하면 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에 나의 뇌 용량은 아이뻐 램처럼 너무나도 짜다. 궁금한 것을 효율적으로 검색할 수 있는 최적화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쏟아지는 정보에 비교한 나의 뇌 용량 정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loppy_disk

 

 

  요즘 와이프는 대학원에서 화학사 수업을 듣는다. 종종 관련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나역시 화학사 관련 에피소드를 적당히 녹여낸 수업을 하는 편이라고 (나름) 생각하기에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화를 조금 길게 하다보면 내용의 깊이가 한없이 얕음을 느끼고, 결국 한계점에 다다른다. 머릿 속에 저장된 내용을 끄집어내려 노력하지만 애시당초 그렇게 깊은 지식은 저장된 적이 없었다. 머릿 속 검색창에 아무리 Ctrl+F로 특정 인물이나 주제로 검색하려 해도 결과가 없다고 한다. 처참한 기분이다. 그래서 갑자기 화학사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대화 중에 생겼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공간 이곳 저곳을 들쑤셨다. 평화로운 나만의 오후 시간을 화학사 검색하는데 다썼다. 

 

 

  그러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시간을 들여 검색하고, 화학사 공부를 하는게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화학사를 수업에 적용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도움이 안 될 리는 없다.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교과서에도 여러 화학자들과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 또는 사건 자체가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어떤 화학적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나 개념이 갖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사들은 수업 전체적인 진행에 관련 내용을 적절히 첨가한다. 마치 조미료를 넣 듯. 그러니 아무래도 교사가 화학자와 시대상, 뒷 이야기, 인과 관계와 관련된 화학사를 많이 알수록 학생들이 접할 수 있는 내용은 풍부해진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어차피 수업시간에 제시하는 화학사 관련 내용은 인터넷에서 대부분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굳이 부족한 수업시간에 이런 내용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인터넷에 더 깊고, 전문적인 자료가 있는데? 필요에 따라 인터넷 접속만으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정보인데? 우리는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지 한 손으로 해결해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이것 저것으로 바쁜 교사가 굳이 시간을 들여 화학사까지 따로 공부하고,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있을까?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전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부정할 수 없다. 어차피 '검색'하면 누구에게나 똑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내용이면 학생들에게 알려 줄 필요가 없을까? 모르겠다.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내가 수업 시간에 가르쳐왔던 내용 중 검색해서 나오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인터넷 공간에는 내 설명보다 훨씬 보기 좋게 정리된 글도, 이미지 자료도 풍부하다. 언어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 양은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이다.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 알 수 있다. 그런 세상이다.

  허나, 검색하지 않으면 평생 모를 수 있다. 의외로 앎 그 자체를 위한 '검색'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활하면서 필요에 의한 검색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는 반면, 스쳐지나가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검색은 의지를 갖지 않으면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다음 두 가지 예시 중 직접적인 검색으로 연결되는 것은 무엇일까?

1)
때늦은 점심 시간. 배가 너무 고파서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고자 한다.  그런데, **중국집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2)
화학 수업시간에 '라부아지에가 실험을 통해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발견한건지 궁금증이 생겼다.)

  둘 중에서 어떤 것이 직접적인 검색으로 연결될까? 필요에 의한 1)에 비해 2)는 검색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나마도 (괄호) 안의 궁금증을 크게, 지속적으로 느꼈을 때 가능하며, 그 궁금증이 수업시간 내내 괴롭히다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찜찜하게 남아있어야 검색으로 연결될 수 있다. 처음부터 궁금증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면, 절대 검색으로 연결될 리 없다.

  * 덧글 1. 개인적으로 수업 중 이러한 '궁금증 해결을 위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허용적인 분위기를 적극 지지한다. 물론, 현실 속 아이들은 우리의 기대를 언제나 넘어선다. 

  * 덧글 2. 혹시나 라부아지에의 실험 장치의 생김새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까 싶어 그림을 첨부합니다. 그림의 장치를 이용해서 어떻게 실험을 했는지 궁금하시다면, '검색'해보심을 추천합니다.

 

라부아지에의 실험장치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rait%C3%A9_%C3%89l%C3%A9mentaire_de_Chimie

 

   결국 궁금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에 달린 문제이다. 어떠한 내용이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닌 관련 내용을 통해 학생들의 궁금증을 자극하여, 결국에 참지 못해 스스로 검색에 도달할 수 밖에 없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만약 내가 화학사를 수업에 적극 활용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어떻게 앎의 욕구를 끌어올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루 24시간 중 일부를 인터넷 공간에서 보낸다. 인터넷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쇼핑을 하고, 재미있는 영상을 시청하고, 게임도 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나처럼 순간의 떠다니는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인터넷 공간에 머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순수한 호기심 해결을 위해, 앎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이 공간에 얼마나 자주, 오래 머무르는지도 한 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에 머무르는 이유가 후자에 해당한다면,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서는 자녀에게 스마트 폰을 사주면서 주저할 필요가 없으며, 학교는 수업 중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오늘 내가 앎을 위해 검색한 것은 무엇일까? 검색을 통해 나는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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