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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다양한 탄소 화합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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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와이프가 뜬금없이 이런 메세지를 보냈다.

"탄소 3개랑, 산소 2개, 수소 8개를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탄소 화합물을 모두 그려보시오. 단, 주어진 모든 원자를 사용할 필요는 없으며, 일부의 원자가 남아도 무방하다. 결합은 실선으로 표시하며, 비공유 전자쌍은 표시하지 않는다."

최대 몇 가지나 나오는지 그려보고 알려줘~~


  그렇다. 학생들의 온라인 수업에서 제시할 과제라고 한다. 학생들이 과제 이후에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자료를 만들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 화학1 첫 단원에서는 생활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몇 가지 탄소 화합물을 소개한다. 성취기준을 살펴보면, 학생들이 탄소 화합물이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사례를 조사하고, 발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원한다. 이미 통합과학에서 다양한 광물과 탄소 화합물들이 특정 규칙에 따라 결합하고, 생성되는 과정을 학습한다. 이를 위해서 이론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다루기 때문에, 고2에 학습하는 화학1의 해당 과제가 막연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화학이라는 과목명으로는 초입 단계이므로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이 다수 있다해도 그 역시 당연하다.

  보통 이러한 과제는, 학생들이 모든 구조를 찾아내길 기대하며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런 과제를 제시하는 이유는 스스로 구조를 그려보고 고민해보면서 달랑 탄소 3개, 산소 2개, 수소 8개 만으로도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탄소 화합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구조적으로 어떠한 것은 되고, 어떠한 것은 안되는지를 구별하는 법을 배우게하는 데 있다. 과제 이후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구조가 더 많거나 생각한 구조가 허용되지 않는 불일치를 경험하면서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와이프의 메세지 이후 나도 하나씩 그려보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이미 분자모형을 이용해서 직접 만들고 하나씩 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구조 하나하나를 영상이나 자료로 제공하려는 것 같다. 와이프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조를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경쟁심에 결국 나도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다 찾았다는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글을 쓰면서도 계속 추가하고 있다.)

분자모형으로 표현해 본 몇 가지 탄소 화합물 [와이프 제공]


  모든 원소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조건 때문에 탄소(C) 1 개, 수소(H) 4개만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메테인(CH4)부터, 제시한 13개의 원자를 모두 사용해야만 만들 수 있는 프로페인-1,2-다이올 까지 너무나도 다양하다. 게다가 탄소-탄소 다중 결합까지 고려한다면, 어마무시하게 많은 종류의 화합물이 추가된다. 일반적으로 안정하지 않아 생각하지 않는 형태인 퍼옥시 화합물이나, 하이드로퍼옥실기를 가지는 화합물, 탄소와 산소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고리 구조까지 생각한다면, 가짓 수는 더 늘어난다.

  일단 탄화수소를 기본 골격으로 유도체를 찾는다. 탄소수를 1개부터 3개까지 순차적으로 늘려가면서 차근차근 그려야 헷갈리지 않는다. 탄소수가 3일 때, 최대 가질 수 있는 수소수는 8이기 때문에 어떻게 구조를 바꿔도 수소가 부족할 일은 없다. 따라서 탄소와 산소의 배열만 찾으면 된다. 먼저 탄소수가 1인 경우부터 알아보자.

 

탄소수 1일 때, 가능한 구조들

 

  탄소수가 1인 경우는 몇 가지 없다. 일단 에터와 케톤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에터는 C-O-C 결합을 위해 최소 탄소가 2개 이상 필요하며, 케톤은 카보닐(-CO)기 양옆으로 탄소가 필요하므로, 최소 탄소 3개 이상일 때 만들어진다. 따라서 가능한 유도체는 알코올과, 알데하이드, 카복실산 정도이다. 산소 원자가 2개이므로, 다이올(-OH기를 두개 갖는 알코올류)도 가능하다.

  구조를 그리다가 이산화탄소(carbon dioxide, CO2)를 넣을까 말까 고민 했다. 결국 그림에 넣기는 했다. 엄밀하게는 이산화탄소는 탄소 화합물(carbon compound)이지만, 유기 화합물(organic compound)은 아니다. 현재에 이르러 유기 화합물과 탄소 화합물은 동의어처럼 관용되고 있고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빼는 것이 더 낫긴 하다. 단원명이 탄소 화합물이지만, 다루는 내용은 유기 화합물에 가깝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는 무기물로 분류된다. (그밖에 탄산염, 탄화물 등도 탄소를 포함하지만 무기물로 분류된다.)

  또한 그림에도 넣지 않은 것이 있는데, 바로 하이드로퍼옥실기(-OOH)를 갖는 화합물과 고리형 구조(사이클로프로페인 유도체 포함)이다. 하이드로퍼옥실기를 갖는 가장 간단한 물질이 과산화수소(HOOH)이다. 일반적으로 하이드로퍼옥실기를 갖는 화합물은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았다. 고리형은 그냥 그리기 싫었다. 탄소 세 개만으로 이루어진 삼각형 고리는 각긴장이 커서 불안정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자. (산소 포함하면, 오각형 고리 1,3-dioxolane도 가능한데;;;)

 

 

탄소수 2일 때, 가능한 구조들

 

  탄소수가 2인 경우에는 알코올, 다이올, 에터, 에터+알코올, 알데하이드, 다이알데하이드, 알데하이드+알코올, 카복시산, 에스터가 만들어진다. 앞서 말한대로, 산소 두개가 연속으로 결합하고 있는 퍼옥시물은 그리지 않았다. 탄소-탄소 이중결합을 갖는 에텐(H2C=CH2)을 기본으로 하는 구조까지 고려한다면, 입체 이성질체까지 등장하게 되어 가짓 수는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탄소수 3일 때, 가능한 구조들 (1)

 

  탄소수가 3일 때의 구조이다. 드디어 PPT 슬라이드 한페이지에 모든 구조를 다 넣기에는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보기 좋게 적당히 두 파트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알코올, 다이올, 에터, 에터+알코올만 넣었다. 카보닐기는 다음장으로 넘겼다.

 

 

탄소수 3일 때, 가능한 구조들 (2)

 

  두 번째 그림에는 카보닐기를 포함하는 알데하이드, 다이알데하이드, 알데하이드+알코올, 알데하이드+에터, 케톤, 케톤+알데하이드, 카복실산, 에스터를 넣었다. 탄소수가 3 이상부터 케톤 구조가 가능하다. 가장 간단한 케톤은 아세톤(acetone, propan-2-one)이다. 오히려 카복실산과 에스터는 산소 두 개의 위치가 고정되기 때문에 많은 구조가 나오지 않는다.

  그린 구조를 모두 세어보니 39개이다. 물론, 만들어놓은 PPT에는 그리다 포기한 에텐과 에텐 유도체만 10개가 넘으니 탄소 3개, 산소 2개, 수소 8개로 만들 수 있는 탄소 화합물 구조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교에 출근하지 않았지만, 출근한 것 같은 하루이다. 와이프의 과제로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고 있던 학생이 우연히 구글링하다가 이 글을 읽고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더 복잡해졌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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