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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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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보내는 스승의 날은 조금 불편하다. 학급이나 동아리 아이들이 감사함을 표한다고 우루루 교무실에 몰려올 때, 또는 어수선하게 무언가 준비하고 있음이 티남에도 모른척하고 있어야 할 때 만큼은 해가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평소 주위 사람들과 감사한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 서투른 나의 개인적인 문제인 듯 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이 시간을 들여 써온 편지는 삐뚤빼뚤해도 당연히 고맙고, 그 자체로 너무 소중하다. (서술형 답안지는 삐뚤빼뚤하면 전혀 고맙지 않다.) 올해는 휴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집에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조용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가지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 없는 텅빈 학교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썰렁하게 느껴지긴 할 것 같다.

  스승의 날이라는 말 자체에 포함된 '스승'이라는 단어가 나는 조금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스승이라는 단어를 teacher 보다는 mentor의 느낌으로 내가 받아들이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그저 '교육의 날' 정도로만 용어가 바뀌어도 부끄러움은 많이 줄 듯 하다.(와이프는 4년에 한 번, 2월 29일 정도면 부담없고 딱 적당하다고 한다.)

  매 회 전부 소중하게 챙겨보았던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서 옮겨본다.

Q. 유시민 선생님, 인생 멘토가 계신가요?

A. 없어요. 저는 멘토도 없고, 제가 멘토가 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요. 대신 저는 선생님이 많아요. 선생님과 멘토의 차이는 뭐냐. 선생님은 그냥 자기 인생을 사는 거에요. 그 분은 자기 인생을 사셨고, 저는 그 분의 인생에서 제가 배울 바를 배우는 거에요. 그 분은 저에 대해서 책임을 하나도 안 져도 돼요. 내 인생에 참고하는 건 내 몫이지. 그 분 몫이 아니잖아요. 멘토-멘티는 되게 부담스러운 관계에요. 저는 이런 관계 너무 끈적끈적하고 안 좋아해! 그래서 멘토를 안 만들려고 하고, 누구의 멘토도 안 되려고 해요.

- 알쓸신잡2 10회 시청자 질문과 그 대답 중에서

  나도 그저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거쳐가는 많은 선생님 중 하나이길 바란다. 나를 만난 학생들이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나로부터 참고 할 만한 것을 한 두 가지라도 찾았다면, 오히려 그것은 내가 고마워야 할 일인 것 같다. 어떤 과거의 기억을 더듬다가 스쳐가는 배경으로 내가 등장한다해도,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나는 그저 내 인생을 살고, 내 가치관과 교육관에 따라 부끄럽지 않게 살면 된다.

  오전에 휴대폰 사진을 정리하다가 2016년에 받았던 선물(?)을 찍어둔 사진을 찾았다.

 

 

 

 

 

  선물을 한 당사자인 22기 녀석들도 졸업한지 햇수로 벌써 4년이나 지났으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 첫 번째 사진의 가면을 벗기면 내 캐리커쳐가 나온다. 뒷면에는 롤링페이퍼가 있다. 두 번째는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황이 너무 생생하게 생각나 너무 웃기다. 마치 승리를 자축하고, 구성원들의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해 적장의 목을 베어 교실 뒤에 걸어놓은 것 같았다. 아직까지 "선생님, 한 번 써보세요. 써보세요." 라고 했던 교실을 가득 채운 외침은 또렷하다. 반면, 실제로 썼는지 안썼는지는 희미하다. 만일 팩트가 '썼었다.' 일지라도 '결코 쓰지 않았다'고 기억하겠다.(실제 가면 디테일은 사진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저 모자 부분의 빨간게 과자박스였던가...)

  이 녀석들 중 누군가는 벌써 대학 4학년으로 졸업과 취업을 걱정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라의 부름에 의무를 다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시 학업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하다. 각자의 방식과 생각으로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해결해나가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문득 이런 생각들이 날 때, 나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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