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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화학이야기

원자 모형의 변천 (3) 보어의 원자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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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모형의 변천 (1) 원자 내부가 왜 궁금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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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모형의 변천 (2) 원자핵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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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모형의 변천 (3) 보어의 원자 모형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0. 러더퍼드 모형의 한계

  원자보다 작은 입자가 발견됨에 따라 원자 구조를 설명하려는 몇 가지 모형이 등장한다. J.J. 톰슨은 전자를 발견한 뒤 '플럼 푸딩 모형'을 제안했으며,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질량이 매우 크고 양전하를 갖는 핵을 발견한 뒤 태양계를 닮은 '행성 모형'을 제안했다.

그림 1. 러더퍼드의 행성 모형(1911)

  러더퍼드의 '행성 모형'은 핵과 전자를 모두 포함하는 그럴듯한 모형이지만, 원자 구조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음을 러더퍼드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먼저, 전하를 띠는 입자가 가속되거나 회전 운동을 하면,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따라 복사선(전자기파)을 방출해야 한다. 전자는 음전하를 띠는 입자다. 따라서 핵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는 복사선을 방출하고 그만큼 에너지가 감소해야 한다.

그림 2. 러더퍼드 모형의 한계 [출처] Oxtoby, Principles of Modern Chemistry 7th, 154p


  에너지가 감소한 전자는 기존의 원궤도를 유지할 수 없으며, 마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듯 회전 반경은 점점 작아지고, 핵에 가까워지다 붕괴해야 한다.<그림 2> 이론적으로 계산된 원자의 수명은 매우매우매우매우 짧다.


  좋다. 원자의 안정성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어찌어찌 원자가 존재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원자가 내놓는 복사선(빛)의 스펙트럼 문제가 남아있다. 이미 분젠과 키르히호프 등에 의해 다양한 원자들이 선 형태의 스펙트럼을 갖는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었다. (관련글 : 수소 선 스펙트럼(197))

  러더퍼드 모형에 따라 전자가 핵 주위를 돌고, 이로 인한 전자기파가 방출된 것이라면 연속된 스펙트럼이 관찰되어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그림 3. 수소, 수은, 네온의 선 스펙트럼  [출처] Oxtoby, Principles of Modern Chemistry 7th, 4.12.

  '원자 안정성'과 '선 스펙트럼' 모두 러더퍼드 모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다.

 

1. 닐스 보어의 등장

  러더퍼드 모형의 구조적 한계를 해결한 사람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4-1962)이다. 보어는 러더퍼드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림 4. 닐스 보어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iels_Bohr.jpg

  보어는 1911 년 코펜하겐 대학에서 《Studies on the Electron Theory of Metals, 금속의 전자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J.J. 톰슨의 지도를 받기 위해 박사후 연구생 신분으로 캐번디시 연구소를 찾는다. 하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인해 톰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는 실패한다.

  다행이도 톰슨은 맨체스터 대학에 재직 중인 어니스트 러더퍼드를 소개해주었고, 러더퍼드가 보어에게 함께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활발하고 사교적인 실험 물리학자 러더퍼드와 진중하고 지독하리만큼 사유적인 이론 물리학자 보어는 상당히 대조적이었지만, 좋은 연구 파트너였다.

  보어는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 관심이 많았다. 왜 원자는 붕괴하지 않는지, 왜 그렇게 빈 공간이 많은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보어는 물질 대부분이 가열되면 빛을 내고, 각기 다른 스펙트럼을 갖는다는 사실로부터 '빛의 성질'과 '원자 구조'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문제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 믿었다.

  보어는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의 양자론(quantum theory)[각주:1]을 원자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인슈타인이 '빛'에 양자론을 적용하여 광전 효과(photoelectric effect)를 설명해냈 듯이, 보어도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림 5. 연속적인 vs 양자화된 에너지 준위의 비교 (계단 모형)

  그러다 우연히 스위스의 수학자인 요한 발머(Johann Jakob Balmer, 1825-1898)가 정리한 '수소 스펙트럼에 관한 식'을 접한다. 코펜하겐의 분광학자 한스 마리우스 한센(Hans Marius Hansen, 1886-1956)으로부터 발머 식이 갖는 물리적 의미를 해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보어는 발머 식을 접하는 순간, 고민했던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고 훗날 말했다.

발머 식(위)과 뤼드베리 식(아래)

  원자가 내놓는 '빛'의 스펙트럼 파장 값이 일련의 자연수 조합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은 불연속성을 바탕으로하는 양자론을 '원자'에 적용하려던 보어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다. 

  1913 년, 보어는 총 세 편에 걸친 논문 《원자 및 분자의 구성에 관하여, On the constitution of Atoms and Molecules》을 차례로 발표한다.

그림 6. 원자 및 분자의 구성에 관하여  [출처] 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1080/14786441308634955?journalCode=tphm17

 

2. 보어의 원자 모형

  보어가 고민 끝에 내놓은 원자모형은 러더퍼드 모형과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중심에 핵이 있고, 전자는 핵 주위를 회전한다. 마찬가지로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행성들이 생각난다.

  다만, 보어 모형은 전자가 속한 '궤도(orbit)'에 집중한다. 그리고, 전자가 지녀야하는 속성에 집중한다. 전자는 특정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으며, 허용되지 않는 궤도 사이 공간에는 존재할 수 없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보어의 궤도 모형(orbit model)이다.

그림 7. 보어의 궤도 모형

  궤도 모형의 가장 큰 성과는 원자가 내놓는 빛의 스펙트럼을 효과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어가 만들어낸 성공적인 결과에 환호하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보어 모형에는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대담한 가정(assumption)이 있기 때문이다.

 

3. 대담한 가정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양자론을 '빛'에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광전 효과와 컴프턴 효과와 같은 빛의 입자성을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실험적 증거가 있었다 해도 '오랜 기간 파동으로만 여겨지던 빛이 입자의 성질 또한 갖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보어는 양자론을 '원자 구조'에 적용하는 시도를 한다. 이 역시 물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시작점이 된다. 물론,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보어는 몇 가지 가정을 통해 '원자의 구조'와 '원자가 내놓는 스펙트럼'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총 71 페이지에 이르는 빡빡한 세 편의 논문에 바탕이 된 그의 가정은 기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 상식적이지 않았다. 보어가 제안한 가정은 다음과 같다.

1) 전자는 특정한(허용된) 궤도(orbit)만을 회전한다. 이러한 상태(정상 상태, stationary state)에서는 전자는 에너지를 잃지 않고, 전자기파도 방출하지 않는다. 정상 상태의 전자 운동은 고전 물리학 법칙을 따른다.

2) 전자가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할 때만 전자기파를 방출하거나 흡수한다. 전자가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 현상을 양자 도약(quantum jump)이라 하며, 양자 도약은 고양이가 선반 위로 부드럽게 뛰어오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기존 궤도의 전자가 사라짐과 동시에 다른 궤도에 불쑥 생겨난다. 마치 태양계 지구가 원래 궤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화성 궤도에서 불쑥 나타나는 격이다.


  보어는 첫 번째 가정을 통해 허용된 궤도에서만 전자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왜 전자가 허용된 궤도에만 존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며,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또한 회전하는 전자가 에너지를 잃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가정 또한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

  전자가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도약하는 과정 또한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고전 물리학에서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한다. 비탈면을 굴러 내려오는 공은 연속적인 에너지 변화를 갖는다. 하지만, 보어의 전자 도약 과정에는 '중간'이 없다. 출발점과 도착점만 있을 뿐, 전자가 어떻게 이동하는지에 대한 '과정'은 설명조차 될 수 없다. 궤도와 궤도 사이에 전자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전자가 실제로 어떤지 보어 역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런 가정을 하면, 자연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낼 수 있는 걸.


 

  보어의 가정은 말 그대로 가정(assumption)이다. "만약 이렇다면, 만약 저렇다면, 전자가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는다면, 전자가 정해진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면..." 등등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를 밝히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인간이 이해를 못했다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그 가정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관찰된 현상이 그 가정을 뒷받침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자연이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관찰된 (자연) 현상이 먼저고, 그걸 설명하려는 (인간의) 이론이 나중이다.

 

4. 보어 모형의 타당성

  보어의 가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어의 모형은 당시 해결하지 못했던 선 스펙트럼 문제를 분명하게 해결해주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 보어 모형이 어떻게 스펙트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지 살펴보자.

  보어는 플랑크의 양자론,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이론을 원자에 적용한다. 광양자 이론은 말그대로 빛은 알맹이로 되어 있으며, 빛 알맹이의 에너지는 빛의 진동수(υ)와 플랑크 상수(h)의 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보어의 가정에 의하면, 원자가 내놓는 빛은 전자의 궤도 이동에 의한다. 만약, n번 째 궤도에서 m번 쩨 궤도로 전자가 이동하면, 두 궤도 사이 에너지 차이(Δ= Em  - En)에 해당하는 진동수의 빛(hυ)이 방출된다.

  위 식을 진동수(υ)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스펙트럼을 통해 얻은 뤼드베리 식에 따르면, 진동수는 다음과 같다. (관련글 : 수소 선 스펙트럼(197))

  진동수에 관한 두 식을 조합해 정리하면, n번 째, m번 째 궤도의 에너지 준위를 구할 수 있다.

  발머와 뤼드베리 식에 포함된 n, m 의 미지수는 자연수이며, 이는 원자 내부가 불연속적인 에너지 배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발머와 뤼드베리는 수소 선 스펙트럼 파장과 진동수가 규칙성을 갖는다는 관찰 결과(현상)를 바탕으로 일반화된 식을 세웠다. 보어는 양자론의 관점에서 관찰된 현상을 이론적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원자 내부에 양자화된 불연속적인 궤도(에너지 배열)를 갖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보어의 양자론적 해석이 실험을 통해 '검증' 될 수 있는가이다.

  1 년 뒤인 1914 년, 제임스 프랑크(James Franck, 1882-1964)와 구스타프 헤르츠(Gustav Ludwig Hertz, 1887-1975)는 수은 기체와 전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수행했으며, 이 실험을 통해 전자의 양자 도약 현상과 불연속적인 전자 궤도를 확인하였다. 보어의 가정이 어느 정도 증명된 것이다. 둘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25 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Frank-Hertz 실험  [출처] Oxtoby, Principles of Modern Chemistry 7th, 4.13.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ranck-Hertz_en.svg

 

  이후 보어의 모형은 요하네스 조머펠트(Arnold Johannes Wilhelm Sommerfeld, 1868-1951)[각주:2] 에 의해 보다 정교화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원자 모형의 변천 (3) 보어의 원자 모형 - 끝 -

 

[참고한 책]

* 곽영직, 양자역학으로 이해하는 원자의 세계, 지브레인
* 김영훈, 빛과 전자의 초대 Quantum, 김영훈, 진샘미디어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양자론은 막스 플랑크가 흑체 복사(blackbody radiation)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이론이다. 양자론은 에너지를 연속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에너지를 지닌 최소 알맹이(양자)들의 모임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에너지 불연속성을 바탕으로 한다. [본문으로]
  2. 조머펠트는 독일 뮌헨 대학에서 교수겸 이론 물리학 연구소장으로 32 년간 근무했는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조머펠트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들 중에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으로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피터 디바이, 한스 베테 등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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