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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화학이야기

화학사 이야기 - 방사능(Radioa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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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사 이야기 - 방사능(Radioactivity)

- 뢴트겐의 X선과 베크렐의 우라늄선 -

 

1. 뢴트겐 이야기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Wilhelm Konrad Röntgen, 1845-1923)은 음극선(cathode ray)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음극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실험이 이루어지는 진공 유리관 내부에는 음극선과 반응할 물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리관 벽면에서 형광색 빛이 났다. 아무도 이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림 1. 빌헬름 뢴트겐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1894년, 뢴트겐은 진공 유리관을 투과하는 음극선의 양을 측정하는 연구를 한다. 음극선이 유리관을 투과하면서 형광빛을 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음극선이 진공 유리관을 투과하지 못한다고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뢴트겐은 미량의 음극선이 새어 나올 수 있다고 달리 생각했다.

  뢴트겐은 음극선이 유리관을 투과할 때, 그 세기가 매우 약하기 때문에 관찰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암실에서 두꺼운 검은색 종이로 진공 유리관을 완전히 감싸 빛이 새어나올 수 없게 했다. 유리관 내부 빛을 모두 차단하면, 유리관을 투과하는 음극선의 흔적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진공 유리관 맞은편, 책상 위에 놓인 감광 스크린(백금시안화바륨)에서 미세한 형광빛이 나는 것을 발견했다. 음극선은 공기 중에서 멀리 진행하기 어려웠기에 뢴트겐은 형광빛의 원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복사선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 2. 베르타 뢴트겐의 X선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irst_medical_X-ray_by_Wilhelm_R%C3%B6ntgen_of_his_wife_Anna_Bertha_Ludwig%27s_hand_-_18951222.gif


  1895년, 뢴트겐은 이 복사선이 물체를 투과하고, 사진 건판을 검게 감광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뢴트겐은 이 복사선을 이용하여 약혼녀 베르타의 손 사진을 찍었는데 손 안의 뼈는 물론이고, 끼고 있던 약혼 반지 또한 선명하게 나타났다.

  뢴트겐은 이 복사선에 X-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X-선의 발견과 함께 현대물리학이 시작되었다. 뢴트겐은 이 공로로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1901) 수상자가 되었다.

 

 


 

 

2. 베크렐 이야기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고 1년 뒤인, 1896년에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투안 앙리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이 뢴트겐의 복사선과 형광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X-선이 형광 물질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지에 대한 검증이었다.

그림 3. 앙투안 앙리 베크렐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ortrait_of_Antoine-Henri_Becquerel.jpg


  베크렐은 고압 전기에 의해 발생하는 X-선 없이 형광 물질만으로 사진 건판을 감광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만약 사진 건판이 감광되어 검게 변한다면, 형광 물질에서 X-선이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형광 물질은 사진 건판을 감광시키지 못했으나 우라늄(92U)을 포함한 형광 물질은 사진 건판을 검게 만들었다. 우라늄을 포함한 비형광 물질도 사진 건판을 감광시켰다. 베크렐은 우라늄으로부터 새로운 복사선이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복사선은 뢴트겐의 X-선과는 또다른 성질을 보였기에, '우라늄선' 또는 '베크렐선'이라 불렸다.

그림 4. 우라늄 염에 의해 감광된 사진 건판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ecquerel_plate.jpg


  베크렐선은 공기를 전도시킬 수 있었는데, 전류계를 사용하면 방출된 복사선의 세기를 측정할 수 있었다. (이후 베크렐선이 진행하면서 공기를 이온화시킨다는 사실이 러더퍼드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3. 마리 퀴리 이야기

  마리 퀴리(Marie Sklodowska Curie, 1867-1934)는 베크렐의 대학원생이었다. 베크렐선을 방출하는 다른 원소를 찾기 위해 당시 알려진 모든 원소들을 조사했다. 우라늄 외에는 토륨(90Th)이 베크렐선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림 5. 피에르 퀴리(좌)와 마리 퀴리(우)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ierre_Curie_et_Marie_Sklodowska_Curie_1903.jpg


  베크렐선은 순수한 원소(우라늄, 토륨) 뿐만 아니라 해당 원소를 포함한 화합물에서도 방출되었다. 이러한 성질은 온도를 변화시켜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마리 퀴리는 베크럴선을 내놓는 성질을 방사능(radioactivity)이라 정의했으며, 베크렐선을 방사선(radoactive ray)이라 이름붙였다. 또한 방출되는 방사선의 세기가 화합물 내 포함된 원소 백분율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방사능이 원자 자체에 의한 성질이라 판단하였다.

  마리 퀴리는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pitchblende, uraninite)에서 방출되는 복사선의 세기를 측정했다. 피치블렌드는 우라늄 함량이 높긴하지만, 미량의 다른 금속들 또한 많이 포함된 광석이었다.

그림 6. 피치블렌드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itchblende_schlema-alberoda.JPG

 
그런데 피치블렌드에서 나온 복사선의 세기가 기대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마리 퀴리는 우라늄 외에 더 강력한 방사능을 가진 원소가 광석 내 존재한다고 예상했다.

  퀴리는 피치블렌드를 산(acid)에 녹인 후, 단계별로 침전시키면서 물질을 분리해나갔다. 분리된 침전물이 방사능을 갖는지 측정했다.

  먼저 비스무트(83Bi)와 함께 침전한 물질이 방사선을 방출했다. 침전물에 포함된 미지의 방사성 원소에 조국 폴란드를 기리는 의미로 폴로늄(84Po, Polonium)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런데 침전물의 스펙트럼에서 폴로늄에 의한 새로운 선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원소가 있음에도 스펙트럼에 새로운 선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관측되지 않을만큼 양이 적었다는 뜻이다.

  바륨(56Ba)과 함께 침전한 물질도 방사선을 방출했다. 특히, 이 방사성 원소의 염화물 결정은 우라늄보다 900 배 더 강한 방사능을 보였다. 퀴리는 이 원소에 라듐(88Ra, Radium)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4년에 걸친 연구 끝에 남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1906)와 폐우라늄 광석 8톤으로부터 순수한 염화라듐(RaCl2) 0.1g 분리에 성공했다. 환기도 안되고, 비가 새는 버려진 해부학 실습실에서 이뤄낸 결과였다.

그림 7. 피에르 퀴리(좌)와 마리 퀴리(우)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ierre_and_Marie_Curie.jpg


  1903년, 베크렐과 퀴리 부부(마리, 피에르)는 방사선 연구에 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마리 퀴리는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 공로 또한 인정받아 1911년, 노벨 화학상을 한번 더 받았다.

 

 


 

 

2. 러더퍼드 이야기

  뉴질랜드 출신의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캠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 연구실에서 스승인 J.J. 톰슨과 함께 'X-선에 의한 기체의 전도성 효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를 계기로 베크렐의 우라늄선(베크렐선, 방사선)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림 8. 어니스트 러더퍼드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rnest_Rutherford_LOC.jpg


  1898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McGill)대학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프레더릭 소디(Frederick Soddy, 1877-1956)와 함께 우라늄의 방사능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러더퍼드는 베크렐의 우라늄선이 뢴트겐의 X-선과 달리, 투과 능력에 따라 두 종류로 구분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각각을 '알파선'과 '베타선'으로 구분했는데, 베타선은 뢴트겐의 X-선과 비슷한 투과력을 보였지만, 알파선은 얇은 금속판만으로도 차단 가능했다.

그림 9.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1899년, 베크렐은 베타선이 
자기장에서 휘어지는 방향을 근거로 음전하를 띠는 입자의 흐름임을 증명하였으며, 톰슨의 방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비전하(e/m) 값을 구했는데, 톰슨이 얻은 전자의 값과 비슷했다.

  1903년 윌리엄 크룩스(William Crookes, 1832-1919)는 알파선이 황화아연(ZnS) 막에 부딪칠 때, 작은 섬광들이 관찰되는 것을 바탕으로 알파선이 입자의 흐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알파선도 자기장에서 휘어졌으나 베타선에 비해 그 정도가 작았고, 방향이 반대였다. 따라서 양전하를 가진 입자임을 알 수 있었다.

  러더퍼드가 알파선의 휘어짐을 바탕으로 알파선 구성 입자의 비전하(q/m)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1906년, 러더퍼드는 알파선 구성 입자가 수소 이온의 1/2 정도의 비전하 값을 갖는다는 것을 알았으며, 알파선과 베타선 모두 입자의 흐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알파 입자, 베타 입자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화학자 폴 빌라르(Paul Ulrich Villard, 1860-1934)에 의해 세 번째 방사선이 발견되었다. 투과력이 강하고,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지 않았다. 러더퍼드는 엑스선보다도 파장이 더 짧은 강력한 이 복사선에는 '감마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러더퍼드는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방사능이 원자의 내부 현상이며, 자연스러운 붕괴를 통해 다른 원소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이 생각은 '어떠한 원자도 다른 종류의 원자로 변할 수 없다'는 돌턴의 원자론이 바탕이 되는 시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것이었다.

  또한 방사성 물질들이 붕괴하여 질량이 절반이 될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은 언제나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반감기(half-life)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림 10. 반감기(half-life) [출처] https://chem.libretexts.org/Courses/Furman_University/CHM101%3A_Chemistry_and_Global_Awareness_(Gordon)/05%3A_Basics_of_Nuclear_Science/5.07%3A_Calculating_Half-Life


  러더퍼드는 "자연 과학은 물리학 아니면, 우표 수집으로 구분된다." 라고 할만큼 물리학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정작 그가 1908년에 받은 상은 노벨 화학상이지만 말이다. 러더퍼드 대표 업적 중 한 가지인 "알파 입자의 금속박 산란 실험을 통한 원자핵 발견"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11년이다.

 

화학사 : 방사능 이야기

- 끝 -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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