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화학/화학이야기

화학사 이야기 - 플로지스톤설 (phlogiston theory)

728x90

 

화학사 이야기 - 플로지스톤설 (phlogiston theory)

 

1. 연소 반응 (combustion reaction)

  연소란, 간단히 말해 물질이 타는 현상이다. 화학적으로 표현하면, 물질이 산소(O2)와 반응하여 열과 빛을 내는 현상이다. 일종의 산화(oxidation) 반응이다. 

그림 1. 요한 베허(1635-1682)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ohann_Joachim_Becher

  오래 전부터 연소 반응을 통해, 어떤 물질을 더 간단한 물질로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화학 이론 체계화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여겨지는 독일의 화학자 요한 베허(Johann Joachim Becher, 1635-1682, 그림1)는 연소 반응을 자신의 물질론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베허는 물질이 '공기'와 '물', 그리고 '세 종류의 흙'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했으며, 연소가 일어나면 물질을 구성하는 세 가지 흙 중 '기름진 흙'이 빠져나온다고 했다.

  베허의 이러한 주장은 독일의 생리학자 겸 화학자인 게오르크 슈탈(Georg Ernst Stahl, 1660-1734, 그림2)에 의해 확장되었다. 슈탈은 베허의 '기름진 흙'을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는 용어로 대치하였다.

- 플로지스톤(phlogiston)은 '불에 탄'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플로기스토스(phlogistós)'에서 유래했다.
- 베허는 세 종류의 흙을 '기름진 흙(terra pinguis)', '유체 흙(terra fluida)', '암석 흙(terra lapidea)'으로 구분했다.

 

2. 슈탈의 플로지스톤 이론 (phlogiston theory)

그림 2. 게오르크 슈탈(1660-1734)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Georg_Ernst_Stahl

  플로지스톤은 물질에 포함된 채로는 검출되지 않으며, 물질을 빠져나올 때만 검출될 수 있는 미묘한 물질이라고 슈탈은 주장했다. 또한 플로지스톤은 물질을 빠져나올 때 불, 열, 빛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슈탈의 '연소 반응'은 한마디로 '물질이 가지고 있던 플로지스톤을 잃어버리는 현상'이었다.

플로지스톤을 병에 넣을 수는 없지만, 옮길 수는 있다.
나무는 플로지스톤과 재(ash)의 조합일 뿐이다.
금속성 재(Calx)에 플로지스톤을 첨가하는 것 만으로 간단하게 금속을 만들 수 있다.
숯은 거의 순수한 플로지스톤으로 이루어져 있어 금속성 재와 함께 가열하면, 금속성 재를 순수한 금속으로 바꾼다.


  당시, 금속을 강하게 가열했을 때 기존 금속과는 다른 성질의 '금속성 재(오늘날의 금속 산화물)'가 남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결과는 슈탈의 플로지스톤설이 강하게 지지받게 했다. 남아있는 '금속성 재'는 원래의 금속이 '플로지스톤을 잃고, 남은 찌꺼기'로 설명될 수 있었고, 가열 전의 원래 '금속''금속성 재'와 '플로지스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물질(금속) = 플로지스톤 + 금속성 재(연소 반응 찌꺼기)

  또한 '금속성 재'를 ''과 함께 태우면, 원래의 금속이 재생되는 현상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을 통해 설명 가능했다. 숯을 공기 중에서 태우면 굉장히 적은 양의 '숯의 재'만을 남겼는데, 이는 '숯은 플로지스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물질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 숯의 재(미량)플로지스톤(다량)

  따라서 ''과 '금속성 재'를 함께 태우면, 숯에서 빠져나온 '플로지스톤'이 '금속성 재'와 결합하여 '원래의 금속을 재생'한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금속성 재'와 ''을 함께 가열  →  숯의 재 + 플로지스톤 + 금속성 재  →  숯의 재 + 금속

 

  공기의 공급을 중단하면, 연소 반응 역시 중단된다는 사실도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아일랜드의 화학자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은 유리로 만든 종 속에 공기를 모두 뽑아낸 뒤 가연성 물질을 올려놓아도 타지 않는 것을 관찰했으며, 진공 상태에서는 동물도 죽는다는 것(그림 3)도 관찰했다. 보일은 이를 통해 진공 중에서는 연소가 일어나지 않고, 연소는 호흡 현상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3. An Experiment on a Bird in the Air Pump (1768) [출처] https://www.wikiwand.com/en/An_Experiment_on_a_Bird_in_the_Air_Pump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 연소가 일어나지 않는 현상을 슈탈의 플로지스톤 이론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통해 설명한다.

"공기는 플로지스톤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공기에 플로지스톤이 꽉 채워지면 연소는 멈춘다."

  즉, 진공 상태에서는 금속에서 방출되는 플로지스톤을 흡수할 수 있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연소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플로지스톤 이론을 이용하면, 관찰되는 많은 새로운 현상들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성질 또한 모호한 플로지스톤이라는 존재가 많은 것들을 설명 가능하게 하였다. 

  당시 플로지스톤 이론을 통해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던 한 가지 현상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금속이 가열되어 금속성 재(금속 산화물)를 만들었을 때, 그 재의 무게가 이전보다 증가하는 것'이었다. 사실 18C 초반에는 정량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 자체가 드물어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관찰되는 대부분의 화학 변화를 설명 가능하게 만드는 플로지스톤 이론을 훌륭한 이론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금속 산화물의 무게가 순수한 금속보다 증가하는 문제는 18C 후반에 일부 플로지스톤 지지자들이 '플로지스톤은 때로는 음의 무게를 가질 수 있다.'는 가정을 통해 설명하였다. 정말 멋진 일이다. 설명 불가능한 사례가 관찰되면, 플로지스톤에 확인할 수 없는 새로운 성질을 부여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3. 플로지스톤 이론을 거부한다(?)

  당시의 플로지스톤 이론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었다. 유명 화학자들 대부분도 실험에서 얻은 결과를 플로지스톤 이론을 통해 설명하려 했다. 수소 기체(H2)의 최초 발견자로 잘 알려진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 1731-1810)는 공기의 약 80%가 질소(N2), 약 20%가 산소(O2)임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지만, 질소는 '플로지스톤화 공기(phlogisted air)', 산소는 '탈플로지스톤화 공기(diphlogisted air)'로 표현했다. 캐번디시는 묽은 염산과 금속을 이용하여 수소 기체를 최초로 발견했지만, 이 기체가 플로지스톤이라고 생각했다. 플로지스톤 이론에 따르면 금속은 금속성 재와 플로지스톤으로 구성되어 있고, 캐번디시는 금속으로부터 기체를 얻어냈기 때문에 플로지스톤 이론에 맞춰보면,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림 4. 헨리 캐번디시의 공기의 성분 실험 장치 [출처] 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pdf/10.1098/rstl.1766.0019

  염소(Cl2)와 불소(F2) 기체의 최초 발견자로 잘 알려진 칼 쉘레(Carl Wilhelm Scheele, 1742-1786)는 질산을 가열하면, 빨간 불꽃과 함께 불공기(fire air, 산소)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쉘레는 불공기(산소)가 하나의 독립된 원소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플로지스톤의 연소 반응을 돕는 물질 정도로 생각했다. 쉘레 역시 플로지스톤 이론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4HNO3  →  4NO2  +  2H2O  +  O2

  2년 후 영국의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는 산화 수은을 분해하여 칼 쉘레가 얻은 불공기(산소)를 똑같이 얻어냈다. 그리고 그 기체에 탈플로지스톤화 공기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프리스틀리 역시 플로지스톤 이론의 추종자였다. 당시에 플로지스톤 이론은 그만큼 보편적인 것이었으며, 화학자들의 공통된 이론처럼 받아들여졌다.

2HgO  →  2Hg  +  O2

그림 5. 프리스틀리의 기체 실험 장치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riestley_Joseph_pneumatic_trough.jpg

  18C 초반 모든 화학자가 플로지스톤 이론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플로지스톤 이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대표적인 인물로 네덜란드의 헤르만 부르하버(Hermann Boerhaave, 1668-1738, 그림 6)가 있다. 부르하버는 화학자이자 의사였으며, 특히 훌륭한 교수로 평가되었다. 라이덴 대학에서 의학, 식물학, 화학 강의를 맡고 있었으며, 세 분야 모두 뛰어난 강의를 해서 유럽 전역에서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제자 몇 명이 그의 강의를 정리해서 출판한 《Elementa Chemiae》이라는 교재는 그가 죽은 뒤에도 광범위하게 번역되어 사용되었다.

그림 6. 헤르만 부르하버(1668-1738)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Herman_Boerhaave

  부르하버는 금속이 플로지스톤과 금속성 재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라는 플로지스톤 이론에 동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반복되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수은과 납을 더 간단한 물질로 분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속은 다른 물질들과 달리 연소 과정에서 불꽃이 관여하지 않으므로 금속의 연소가 보통의 연소와 다르다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슈탈은 '금속은 플로지스톤을 서서히 방출하기 때문에 사람 눈으로 관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부르하버는 비록 플로지스톤 이론을 반박할만한 설명 체계를 내놓지는 못하였으나 플로지스톤 이론 지지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적을 했다. (참고로, 아래의 인용구 번역 중 (괄호) 안에 기재한 용어는 문장의 의미를 좀 더 부각시키고자 제가 임의로 의역한 부분입니다.)

"We must check the Forwardness of the Imagination by the Weight of Experiments"
우리는 실험에서의 무게 값(정량적인 수치)을 통해 스스럼없이(무분별하게) 상상하는 것을 확인(경계)해야 한다.


  이후 등장한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de Lavoisier, 1743-1794)는 부르하버의 지적대로 실험에서의 무게 값, 즉 정량화된 수치를 강력한 증거로 하여 플로지스톤이라는 개념을 실험가들의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워냈다. 플로지스톤 이론을 적절히 수정하거나 보다 정교하게 만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 화학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그림 7. 라부아지에의 실험 장치 [출처] https://gallica.bnf.fr/ark:/12148/btv1b8615746s/f629.image.r=.langEN

  쉘레가 발견한 불공기(fire air), 프리스틀리가 발견한 탈플로지스톤화 공기는 모두 산소이며, 연소 반응과 호흡, 발효와 산화 모두가 산소와 관련되어 있고, 산소 그 자체가 하나의 원소라고 주장했다. 라부아지에의 등장과 함께 화학자들 대부분은 연소 반응이 산소에 의한 것임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원소의 현대적 개념 또한 확립되었다. 불과 20년 만에 겪은 변화이다.

  플로지스톤 이론의 폐기는 근대 화학의 시작점이 되었으며,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이 과거의 이론을 대체한 이 사건을 화학 혁명(The Chemical Revolution)이라 부르게 되었다. 라부아지에는 1783년 플로지스톤 이론을 공격하는데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Reflections on Phlogiston》이라는 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왜 현대 화학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하나의 '설'로써 남았는지, 왜 라부아지에를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칭하는지를 알 수 있다.

'... chemists have made phlogiston a vague principle which is not strictly defined and which consequently fits all the explanations required of it; sometimes the principle has weight, sometimes it has not; sometimes it is free fire, sometimes it is fire combined with earth; sometimes it passes through the pores of vessels, sometimes these are impenetrable to it; it explains at once causticity and non-causticity, colour and the absence of colour. It is a veritable Proteus that changes its form at every instant.'

'...화학자들은 엄밀하게 정의되지 않고, 그것을 필요로하는 모든 상황에 결과적으로 딱 들어맞게 설명할 수 있는 플로지스톤이라는 모호한 원칙(개념)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때때로 무게를 가질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으며, 때로는 자유로운 불처럼 흙과 결합한 불처럼 여겨진다. 때로는 혈관의 구멍을 통과할 수도,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부식성과 비부식성을 한 번에 설명하거나 색을 갖거나 그렇지 않음 또한 동시에 설명한다. 마치 순간마다 형태를 자유로이 변화시키는 진정한 프로테우스와 같다.'

 

플로지스톤설 - 끝 -

 


 

[관련 글]

118. 라부아지에의 산소이론-1

 

화학사 이야기 -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 (1)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 (Oxygen Theory of Combustion) (1) 1. 근대 화학의 아버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6 학년에 연소 반응이 처음 등장하며, 9 학년(중3)에 화학 반응과 질량 보존의 법칙을 다룬

stachemi.tistory.com

119.  라부아지에의 산소이론-2

 

화학사 이야기 -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 (2)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 (Oxygen Theory of Combustion) (2) 본문은 링크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https://stachemi.tistory.com/118 화학사 이야기 -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 (1)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 (O..

stachemi.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