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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화학이야기

베리 유사회전 (Berry pseudo-rotation Mech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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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유사회전 | Berry pseudo-rotation mechanism

 

 

1. 서로 다른 환경에 놓여있음도 구별되지 않는 이유 ?

  PF5는 <그림 1>과 같이 삼각쌍뿔형 구조로, 직선상에 놓인 2개의 축 방향(axial, 158pm) P-F 결합과 삼각평면 위에 놓인 3개의 적도 방향(equatorial, 153pm) P-F 결합을 갖는다.

  이는 PF5 내 플루오린의 공간상 환경이 다르다는 뜻이며, 두 종류의 플루오린이 있는 것처럼 다뤄질 수 있다. 단결정 X-선 분석을 통하면, 축 방향과 적도 방향의 P-F 결합 길이 차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 PF5의 두 종류 P-F 결합

  따라서, 이 분자의 19F-NMR과 같은 다른 분석 방법을 통해서도 두 종류의 플루오린(F)에 의한 특징이 스펙트럼에 나타날 것을 기대할 수 있는데, 우리 생각과 달리 일반적인 조건에서 측정된 스펙트럼들은 한 종류의 플루오린(모두 동등한 환경에 놓인 F)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1958년, 미국의 무기화학자인 F. A. 코튼(Frank Albert Cotton, 1930-2007)은 PF5와 동일한 삼각쌍뿔형 구조를 갖는 Fe(CO)513C-NMR 스펙트럼에서 한 종류의 탄소만 확인되는 결과를 '스펙트럼을 측정하는 시간 간격(time scale)보다 더 빠른 속도로(짧은 시간 사이) 화학적 자리 바꿈(구조적 상호 변환)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1]

그림 2. 삼각쌍뿔형 구조의 Fe(CO)5


  Fe(CO)5의 구조가 설령 삼각쌍뿔형(trigonal bipyramidal, TBP)이 아닌, 사각뿔(square pyramidal, SP) 구조라 했어도, 두 종류의 탄소 스펙트럼이 나타나야 했기 때문에, 측정 결과가 예상과 같지 않다는 것은 이래저래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Fe(CO)5 구조가 삼각쌍뿔인 경우 eq : ax = 3 : 2, 사각뿔인 경우 top : bottom = 1 : 4의 신호 세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어찌 되었건 두 종류의 탄소가 확인되었을 때 구조 비교가 가능한 것이다. <그림 3> 참고

그림 3. 삼각쌍뿔형(TBP), 사각뿔(SP) 구조에서 리간드의 환경 차이

 

2. 베리 유사회전

  1960년, 미국의 물리화학자 리처드 스티븐 베리(Richard Stephen Berry, 1931-2020)는 F.A. 코튼이 주장했던 매우 빠른 구조적 변환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안한다.[2]

  이 메커니즘은 베리 유사회전이라 불리는데, 입체수 5인 삼각쌍뿔형(또는 사각뿔) 구조에서 스펙트럼이 측정되는 시간 간격보다 빠르게 일어나는 구조 변환 과정을 설명한다.

[참고] 변환성 분자(fluxional molecule)란, 분자를 이루는 원자들이 재배치되는 움직임을 통해 분자 모양이 구조적으로 동등한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성질인 변환성(fluxionality)을 갖는 분자를 말한다.


  베리는 삼각쌍뿔형 구조의 변환성이 두 개의 축방향 원자(ax1, ax2)두 개의 적도방향 원자(eq1, eq2)의 진동에 의한 자리 바꿈 결과라고 설명하는데, 일직선으로 배열된 두 축방향 원자(ax1, ax2)들이 가위처럼 진동할 때, 적도방향에 위치하던 두 원자(eq1, eq2)가 축 방향 원자들을 밀어내는 방향으로 함께 진동하여 나타난 결과라고 말한다.

  (아래 <그림 4>에서, 처음 축방향에 놓여있던 두 CO 리간드가 마지막에는 적도 방향에 놓인 것처럼 보이며, 처음 적도 방향의 두 CO 리간드는 마지막에 직선상에 놓이며, 축방향에 놓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림 4. Fe(CO)5 리간드 진동에 의한 구조 변환성 [출처] commons.wikimedia.org @Iron-pentacarbonyl-Berry-mechanism


  결과적으로는 축방향 원자 두 개와 적도 방향 두 개의 원자가 자리를 바꾼것 같은 모양이며, 전체 구조 변화는 삼각쌍뿔형(TBP)에서 사각피라미드형(SP)의 전이상태를 거쳐 최종적으로 다시 삼각쌍뿔형(TBP) 구조에 이른다.

그림 4. 베리 유사회전 [출처] commons.wikimedia.org @Berry_pseudorotation


  이러한 자리 바꿈 과정은 마치 분자가 회전하는 것 같은 효과를 보여 베리 유사회전(Berry pseudo-rotation, BPR)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자의 상호 굽힘 진동에 의한 유사 회전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3.6kcal/mol(PF5의 경우 ) 정도의 작은 에너지만 필요하다.

  분자 운동이 극히 느려지는 극저온 조건(-100 ℃ 이하)이나 킬레이트 리간드에 의해 고정된 결합각을 갖는(원자들이 서로 묶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원자들 사이의 자리 바꿈(유사 회전)이 매우 빠르게 일어나 결과적으로 축 방향 원자(ax)와 적도 방향 원자(eq)를 구분할 수 없게끔 만들고, 분광학적으로는 마치 동등한 다섯 개의 원자만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결과(하나의 피크)를 보여주게 한다.

ClF3, SF4의 온도에 따른 F-NMR 스펙트럼 [출처] https://slideplayer.com/slide/17924631/ @by Jeffrey Barrett

 

 

[참고]

[1] Cotton, F. A., Danti, A., Waugh, J. S., & Fessenden, R. W. (1958). "Carbon‐13 Nuclear Resonance Spectrum and Low‐Frequency Infrared Spectrum of Iron Pentacarbonyl." The Journal of Chemical Physics29 (6), 1427-1428.

[2] Berry, R. S. (1960). "Correlation of rates of intramolecular tunneling processes, with application to some group V compounds." The Journal of Chemical Physics32 (3), 933-938.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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