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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수업이야기

하인츠 딜레마 상황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 (feat. 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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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새로운 심리학 주제로 학생들과 수업하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자극이 된다. 주당 두 시간의 수업을 학생 발표와 교사 주도형 수업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름 좋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준비해오는 주제들도 신선하고, 나름의 생각들이 담겨있어서 발표를 듣는 동안 이것저것 필기하면서 배우고 있다.

  수업 방식이 자리 잡은 이후, 교사 주도형 수업을 총 4 번 진행했다. 내가 준비한 주제는 '마이어스-브릭스 성격유형 검사(MBTI)', '바넘 효과(포러 효과)',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과 학습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가장 최근에 '하인츠 딜레마와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을 다루었다.

  사실, 학생들에게 '하인츠 딜레마(Heinz Dilemma)' 상황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 주제 선정의 가장 큰 이유고, 이를 통해 생각을 엿보고 싶었다.

  수업 초반부에 학생들에게 하인츠 딜레마를 설명하는 영상을 제시했다. 그리고 미리 나누어준 활동지를 통해 하인츠와 약사의 행동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하인츠 딜레마'는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 1927-1987)가 인간이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인지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도덕 발달 수준 또한 발달해나간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제안한 딜레마 상황이다.


  유럽에서 한 부인이 특수한 암에 걸려 죽음 직전에 와있다. 의사들에 따르면, 그녀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 가지 약이 있었다. 그 약은 부인과 같은 도시에 사는 한 약사가 최근에 개발한 것으로 라듐을 사용한 약이었다. 약사는 라듐 구입에 200 불을 지불하였으며, 개발된 약에는 2,000 불이라는 가격을 책정했다. 환자의 남편 하인츠는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아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부탁하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돈을 구해보았지만 1,000 불 밖에 되지 않았다. 하인츠는 약사에게 아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약값을 깎아주거나 약 값의 일부를 나중에 갚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약사는 약의 개발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고, 이제는 그 약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며 하인츠의 부탁을 거절했다. 절망한 하인츠는 그날 밤 약국 출입문을 부수고 침입하여 약을 훔쳤다.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약을 구하기에는 하인츠의 돈이 부족하다. [출처] Pixabay @jarmoluk

 

 

1.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

  도덕성(morality)이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행동하게 하는 기준이다. 아동은 부모와 다른 어른들, 또래와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규준을 배우고, 도덕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출처] https://totallyhistory.com/lawrence-kohlberg/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는 장 피아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인간이 사회적 상황에서 도덕적 판단을 해야 할 때, 인지 능력에 따라 단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콜버그는 자신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제안했고, 내담자들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추론했다. 콜버그는 크게 3 수준, 6 단계로 도덕성을 구분하였다. (Kohlberg, 1984)

1 수준 : 관습 이전의 도덕성 단계 (pre-conventional morality)
  - 1 단계 : 처벌 및 복종 지향
  - 2 단계 :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적 상대주의

2 수준 : 관습적 도덕성 단계 (conventional morality)
  - 3 단계 : 대인과 조화를 이룬 도덕성
  - 4 단계 :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성

3 수준 : 관습 이후 도덕성 단계 (post-conventional morality)
  - 5 단계 : 사회 계약으로서의 도덕성
  - 6 단계 : 보편적, 윤리적 원칙


  콜버그는 각 단계를 연령에 따라 묶지는 않았으나 그 순서는 일정하고 보편적이며, 어느 한 단계를 뛰어 넘어 다음 단계로 발달할 수 없다고 했다. 높은 단계로 발달해 갈수록 사고체계는 보다 넓은 추론을 할 수 있으며,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마지막 6 단계의 보편적 윤리적 원칙 단계까지 도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이 갖는 몇몇 한계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하인츠 딜레마' 상황을 통한 토론과 의견 교환은 교실 속에서 학생들의 도덕성 발달을 도울 수 있기도 하다. 같은 딜레마 상황에서 학생들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펼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학생들의 생각 엿보기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에 따라 학생들의 응답을 살펴보면,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성의 4단계와 사회 계약으로서의 도덕성 5단계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성의껏 수업에 참여하고, 함께 생각해주고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학생 A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인츠는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구하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 약사가 윤리적으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하인츠의 행동 변화와 결정에 어느 정도의 영향은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약사의 행동과 무관하게 하인츠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정이 어찌 되었건 사회 구성원의 약속인 법이라는 규율을 어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학생 B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하지 않다. 약사가 어떠한 의도와 이유로 약값을 2,000 불로 책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자재가 너무 구하기 어렵거나 약사의 개인 사정 등등) 또한 하인츠가 성실하게 돈을 벌어도 약값을 충당할 수 없었다면, 여론을 이용하여 모금하거나 기타 합법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다시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인츠가 선택한 것은 약을 훔치는 것이었고, 이는 자신의 감정만을 우선시하는 행동을 통해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만약, 하인츠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살인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범죄가 비슷한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으며, 법 체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

학생 C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무리 긴급한 상황일지라도 범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범죄는 범죄고,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 설령, 마땅한 방법이 없었더라도 범죄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 E
정당화할 수 있다. 우선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라 생각한다. 약을 훔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약을 훔쳤다는 잘못에 대한 죗값은 후에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해줄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를 모른척하고 포기하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보상으로서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가치를 도덕적 측면에서 비교했을 때, 약을 훔치지 않는 것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보다 가치로운 것이라 생각하여 약을 훔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F
개발비용과 판매 가격은 비례하지 않는다. 약사가 약을 2,000 불에 팔더라도 잘못은 없다.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소비자가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하인츠의 특수한 상황에 처한다면, 나 역시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이를 살리는 것이 높은 우선순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정당한 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 약사는 구매를 강요하지 않았고, 불법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인츠의 행동은 명백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물론, 약사의 행동에도 결점이 있다. 단순한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생명을 살릴 수 있음과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난받거나 처벌받을 이유는 없다.) 만약, 아내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공익을 위해 사회에서 약값을 지불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학생 G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를 살릴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그 행동이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학생 H
두 가지 면을 모두 갖고 있다. 죽어가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약사의 악덕함에 의해 기존의 노력이 허무하게 사라졌고, 이에 이성을 잃고, 약을 훔쳤지만, 그 행동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스스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면, 정당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을 훔치는 행위 자체는 잘못된 행동이고, 약사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므로, 그 행동 자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학생 I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론적으로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다 해도 범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하인츠의 행동이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는 목적 뒤에 또 다른 의사에게 생긴 분노와 같은 감정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며, 그 이유를 명확히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 J
약사가 비싼 가격을 요구했고, 하인츠는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여러 방안을 제안했음에도 거절당했다는 것이 약을 훔치는 행동에 대한 도덕적 이유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비도덕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하인츠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인츠는 돈을 지불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것에 대한 근본적인 동기가 아내를 살리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학생 K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하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약속인 도덕적 규범을 지켜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규범을 어기는 이유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계획적으로 규범을 어길 수도 있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선택으로 규범을 위반하기도 한다. 하인츠의 행동이 바로 그렇다. 규범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써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인츠는 규범을 위반한 행동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며, 사회적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학생 L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사가 개발한 약에는 약사의 그간 노력이 담겨있으며, 약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하인츠는 이러한 약을 훔쳤으며, 약사의 재산과 노력을 침해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약값을 요구하면서 절실한 하인츠와 대화하지 않고 정해진 물건값과 방식만을 고수한 약사의 태도로 인해 하인츠의 행동이 어느 정도는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 M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위반하는 것은 사회 공공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학생 N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할 수도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모두 살아가기 위해 태어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매우 큰 고통일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살리기 위한 행동으로 보았을 때는 정당하다. 약사의 경우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은 적절치 않다. 하지만, 아무리 긴박한 상황에 처했다 해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옳지 못하다. 하인츠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다.

학생 O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하지 않다. 약국을 부수고 약을 훔치는 행동은 법을 어기는 행동이다. 당장 눈앞의 상황이 급하다고, 뒷 일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학생 Q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하지 않지만 아내를 살리기 위함이었고, 도둑질로 인한 약사의 피해가 누군가의 생명을 잃는 것에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 보상이 가능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R
하인츠 스스로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하인츠는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자신이 규정한 도덕적 행위의 준칙을 생각하여 행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규범인 법은 어겼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법은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범인데, 개인의 사정을 우선시한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했다. 여기서 개인적인 도덕적 준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에도 사회적 규범의 침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두 가치가 충돌했으므로, 사회와 하인츠 모두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학생 S
사람의 생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그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면, 나의 기준에서 큰 욕심을 가진 이가 비도덕적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하인츠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합법적으로 돈을 구하고, 최대한 노력을 했으며, 그가 추구한 것이 생명을 살리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누군가의 죽음은 슬퍼해야 할 일이지만,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의 막지 못한 죽음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인츠의 행동은 후자라 생각한다.

학생 T
하인츠의 행동은 정당하지 못하다. 아무리 자신의 사정이 급하고, 주변 상황이 자기 마음처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법을 어겨도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인츠의 돌발 행동은 그저 물건을 훔친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법을 잘 지켜가던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이 행동이 정당화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법에 대한 중요성이나 의무감을 잃게 만들어 더 좋지 않은 사회적 현상들을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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