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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주절주절
오슈벨은 교수자의 효과적 지식 전달을 강조하고, 브루너는 학습자의 자율적 발견을 중시한다. 오슈벨이 강조한 학습은 수용 학습이다. 물론, 앞에 유의미라는 말이 붙긴 하지만 무언가 교수자 중심의 색깔을 지우기는 어렵다.
교수자는 학습 과제를 선정하고,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 고민한다. 학습자의 인지 구조를 고려하고, 학생이 잘 연결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소재를 찾는다. 학습자 스스로 무언가 경험하게 하기보다 교수자가 잘 짜놓은 판 위에 학생을 올려놓는 것과 같다.
내가 추구하는 수업이 오슈벨의 유의미 수용학습과 브루너의 발견학습 중에 어디에 더 가깝냐고 묻는다면, 확실히 오슈벨 쪽이다. 연차가 쌓이면서 그렇게 되었다라고 하기에는 신규 시절에도 똑같았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적당한 핑계가 아닌 듯하다.
한결 같이 나(교사) 중심이었다. 학습자 스스로의 '유레카'스러운 발견보다는 주어진 시간 동안 효율적 전달을 위해 스토리 구성에 시간을 쏟았다.
나는 수업의 주도권을 잘 내려놓지 않는 편이다. 주도권이라는 표현은 마치 학생과의 힘겨루기같은 느낌이 있어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무튼 학생 스스로 더디 더디 정보를 깨치는 상황을 못참는 듯하다. 누군가는 학습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조작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인색하다고 비판할 수 있으며, 누군가는 시대에 뒤쳐지는 수업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내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는 것과 학생들의 평가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껏 매년,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학생들에게 수업 평가를 받아왔다. 여러 의견들이 있었지만, 수업 방식에 대한 불만이나 특정 방식의 요구는 없었다. (물론, 앞으로 학생들이 보내는 수업 방식에 대한 시그널을 가볍게 생각하지는 말아야겠다.)
현재의 나는 이것이 나의 고유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더욱 유의미한 학습에 이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자꾸 오슈벨이 아른거렸다 보다. 생각난 김에 정리 한번 해두자.
1. 유의미 학습 (Meaningful Learning)
오슈벨(David Ausubel, 1918-2008)은 학습을 인지구조의 변화로 정의하였다. 오슈벨은 새롭게 배워야 할 학습 과제가 학생의 기존 인지 구조와 잘 연결될 수 있을 때, 유의미 학습이 일어난다고 했다. 유의미 학습(Meaningful learning)은 기계적 암기학습(Rote learning)과 대비되는 학습 형태이다.
교사는 학생의 기존 지식과 새로운 지식이 잘 연결될 수 있도록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오슈벨은 효과적인 설명식 교수법을 통해 '유의미 수용학습(Learning by reception + Meaningful Learning)'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여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오슈벨은 새롭게 제공되는 지식이 기존 지식과 잘 연결될 수만 있다면, 학생들은 무조건적으로 암기하려 하지 않고 내용을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2. 선행 조직자(advanced organizer)
오슈벨은 설명식 교수법을 통한 지식의 전달을 중시했다. 오슈벨의 교수법에서 중요한 것은 교사가 '어떻게' 전달하는가?이다. 부르너(Jerome Bruner, 1915-2016)의 발견학습이 '학습자 스스로의 발견을 통한 지식 습득(학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슈벨은 '지식의 효과적 전달' 측면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관심을 둔다.
유의미 학습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새롭게 학습할 과제가 학생 인지구조 속에 있던 기존 지식에 효과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새롭게 제공되는 지식(학습 과제)이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것(선행 지식)과 서로 연관성 있다는 사실을 학생이 쉽게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교사는 선행조직자(advanced organizer)를 제공하여 학생의 유의미한 학습을 도울 수 있다. 선행 조직자는 학습자가 본격적인 학습 과제를 접하기 전에 제공되는 것으로, 유의미 학습을 유도하는 장치와 같다. 선행 조직자의 주된 역할은 학생 인지 구조 어딘가에 있는 선행 지식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교사는 선행 조직자를 제공하고, 학습자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선행 지식)을 떠올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그 뒤에 학습 과제(새로운 지식)를 제시한다. 제시되는 학습 과제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선행 조직자로 인해 떠올린 기존 지식이 마치 학습 과제를 마중 나온 것과 같은 상황이 되어, 학습 과제와 기존 지식의 연관성을 쉽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선행조직자는 '새로운 학습 과제와 관련된 학습자의 기존 지식을 미리 떠올려보도록 돕는 장치'라 할 수 있겠다.
선행 조직자의 형태는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학습하게 될 내용, 수업 계획, 교사의 판단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공될 수 있다. 단순 질문, 문장, 도표, 그림, 그래프, 개념도 등 어떤 형태든 가능하다. 선행 조직자의 형태보다는 그것이 선행 조직자로서의 역할에 충분히 부합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겠다.
3. 유의미 학습을 위한 선행 조건
선행조직자를 적절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유의미 학습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유의미 학습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유의미 학습을 가능케 만드는 요소를 '유의미가(meaningfulness)'라 한다.
1) 학습 과제는 '논리적 유의미가'를 가져야 한다.
학생에게 제공될 학습 과제는 '실사성'과 '구속성'을 갖추어야 하며, 이 둘을 모두 갖춘 학습과제는 논리적 유의미가(logical meaningfulness)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실사성(substantiveness)은 표현하는 방식을 달리해도 그 의미가 변하지 않는 성질을 뜻하고, 구속성(nonarbitrariness)은 임의로 맺어진 관계(사회적으로 약속된 표현 혹은 기호 등)가 굳어져 시간이 지나도 그 의미를 바꾸기 어려운 성질을 말한다.
실사성 + 구속성 = '논리적 유의미가'
2) 학생에게는 '학습 과제와 관련된 인지 구조'가 사전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논리적 유의미가를 갖는 학습과제가 학생에게 제공되어도, 학습자가 관련된 인지 구조(사전 지식)를 갖지 않는다면, 유의미 학습은 일어나지 못한다.
오슈벨은 논리적 유의미가를 갖는 학습 과제가 학생에게 제공되고, 그와 연결 가능한 개념들이 학생의 인지 구조에 있을 때, 그 학습 과제는 잠재적 유의미가(potential meaningfulness)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학습 과제가 잠재적 유의미가를 갖는다는 뜻은 학습 과제가 학생의 인지 구조에 충분히 연결될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갖는다는 뜻이 되겠다.
예를 들어 이등변 삼각형이라는 동일한 학습 과제도 삼각형, 사각형, 원을 이미 학습한 학생들에게는 잠재적 유의미가를 가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학습자의 수준이 도형의 구분이 이루어지기 전 단계라면 잠재적 유의미가를 가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교사는 수업 설계 이전에 학습자의 학습 위계 및 경험, 인주 구조 등에 대해 고려하여 학습 과제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
논리적 유의미가를 갖는 학습 과제 + 학습 과제와 관련된 학생의 인지구조 = '잠재적 유의미가'
3) 동시에 학생은 학습하려는 마음가짐, '학습 의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학습 과제는 실사성과 구속성을 지녀 논리적 유의미가를 갖추고, 학습자에게는 이와 관련된 인지 구조가 분명, 존재하는 상황이다. 즉, 학습 과제는 잠재적 유의미가를 갖는다. 그럼에도 학습자가 학습하려는 마음가짐을 갖지 않는다면, 유의미 학습은 일어날 수 없다.
결국, 마지막 단계에서 학습자가 학습 과제를 자신의 인지 구조에 연결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하는데, 이를 학습 의향(Learning set)이라고 한다. 만약, 학습 과제가 잠재적 유의미가를 갖는 상태에서 학습자가 학습 의향을 갖는다면, 해당 학습과제는 그 학습자에 대해 심리적 유의미가(psychological meaningfulness)를 갖는다고 말한다.
잠재적 유의미가를 갖는 학습 과제 + 학습자의 학습 의향 = '심리적 유의미가'
[참고]
* 조희형, 최경희, 과학교육의 이론과 실제(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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