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반응의 속도
- 반응식의 화살표에 관심을 갖다 -
1. 반응 속도와 반응 경로
1.1. 화학 반응의 빠르기
속도란, 빠르고 느린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역학에서 속도는 단위 시간 동안 물체가 이동한 거리(변위)로 정의된다. 화학에서는 물체 대신 물질을, 물체의 이동 대신 물질의 변화를 다룬다.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반응(reaction)이라 한다. 반응이 진행되면, 반응물은 줄면서 생성물이 늘어난다. 반응물이 줄어드는 정도, 생성물이 늘어나는 정도로 반응의 빠르기를 나타낼 수 있다.
반응 속도는 단위 시간당 반응물 또는 생성물의 농도 변화로 정의한다. 반응 속도를 나타내는 물질이 반응물인지 생성물인지는 중요치 않다. 관찰자 마음이다. 반응물은 농도 감소량(- d [A])을, 생성물은 농도 증가량(+ d [B])에 관심을 둔다는 차이만 있다.
물질 A가 B로 변하는 반응 , A → B , rate = - d [A]/dt 또는 rate = +d [B]/dt
1.2. 화학 반응의 경로
반응물과 생성물이 무엇인지 알면, 반응 속도를 예측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반응 결과 생성되는 물질을 정확하게 알아도 반응 속도는 예측할 수 없다. 생성물이 열역학적으로 어마 어마하게 안정한 자발적인 반응(ΔG ˚ ≪ 0)이라도 반응 속도가 빠를지, 느릴지 모른다. 엔탈피(H )나 자유에너지(G ) 같은 열역학적 물리량들과 다르다.
반응 속도는 반응 경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응물이 거치는 경로에 따라 반응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다. 마치 내비게이션이 제안하는 경로에 따라 도착 시간이 다른 것과 같다.
물질이 어떤 경로를 선택할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반응이 몇 단계에 걸쳐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다. 반응 중 일어나는 일은 물질만이 알고, 우리는 반응 결과를 통해 추측할 뿐이다.
반응물이 생성물로 변하는 일련의 과정, 거치는 경로를 우리는 '반응 메커니즘(mechanism)'이라 부른다. 반응 메커니즘은 화학자들이 제안하는 일종의 가설(이론)이다. 다양한 관찰 결과와 배경 이론이 뒷받침해주고, 합리적 인과 관계를 바탕으로 제안된 정교한 시나리오다.
물론, 또 다른 누군가의 더 좋은 제안과 근거에 의해 기존 메커니즘이 반박될 수도 있다.
2. 반응은 어떻게 일어날까?
2.1. 충돌 이론 (collision theory)
"반응은 왜 일어날까? A는 B로 왜 변할까?"
이 질문의 답은 보통 열역학적 관점에서 이뤄진다. "B가 A 보다 안정하니까", "반응은 낮은 에너지를 갖는 방향으로 진행되니까"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어떨까?
"반응은 어떻게 일어날까? A는 B로 어떻게 변할까?"
A가 '난 지금부터 변하겠어!'라고 마음먹는다고, 순간 B로 변하지 않는다. A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앞서 말한, 반응 경로와 관련된 부분이기도 하다.
반응이 어떤 경로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반응 속도가 어떤 요인에 영향받는지도 알 수 있다.
반응이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충돌 이론(collision theory)'이다. 반응에 참여하는 물질을 단단한 입자로 생각하고, 이들 간의 충돌로 반응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충돌 이론에 따르면, 충돌이 잘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곧, 빠른 반응을 위한 조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반응 속도는 반응물의 농도에 영향받는다. 반응물의 농도가 증가하면, 단위 부피당 입자 수가 많아지고, 입자 간 충돌 횟수가 증가한다. 자연스레 반응 속도는 빨라진다. 반응 속도는 반응물의 농도에 의존한다.
반응물 농도 증가 → 단위 부피당 입자 수 증가 → 입자 간 충돌 횟수 증가 → 반응 속도 증가
2.2. 화학 반응식이 주는 속도 정보
다음은 A가 B로 변하는 반응의 반응식이다.
A → B
반응식의 계수는 소모되는 A와 생성되는 B 사이의 몰 비가 1 : 1 임을 알려준다. 감소한 A 몰수만큼 B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반응 경로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알 수 없다. 그저 화살표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반응이 느리다고 구불구불한 화살표로 느림을 나타내거나, 길게 늘어뜨려 빠른 반응과 차이를 두지 않는다. 속도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일정한 길이의 곧은 화살표로 표현한다.
따라서 반응식만으로는 A 1개가 스스로 붕괴해 B 1개로 변하는 반응(1)과 A 2개가 서로 충돌해서 B 2개로 변하는 반응(2)을 구별할 수 없다. 두 경우 모두 A와 B의 몰 비는 1 : 1이며, 반응식도 A → B로 같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1)이 A → B 라면, (2)는 A + A → 2B 이다. (1)은 A 1개만으로 스스로 반응이 일어날 수 있지만, (2)는 충돌을 일으킬 A가 최소 2개가 필요하다. (1)과 (2)가 A의 농도에 영향받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2)가 (1)보다 A 농도에 더 크게 영향받는다. (그림 3 참고)
하지만, 이런 세부적인 차이는 화학반응식만으로는 알 수 없다.
2.3. 속도 상수와 반응 차수
A → B 반응의 속도식은 다음과 같다.
반응 속도식: rate = k [A]n
반응 속도(rate of reaction)는 반응물의 농도 [A]에 비례한다. k는 비례 상수, 속도 상수(rate constant)이다.
[A]의 지수항 n 은 반응 차수(order of reaction)이다. 반응 차수는 반응(충돌)에 직접 관여하는 A 입자 수에 의해 결정된다. 반응식을 통해서는 세부적인 충돌 과정을 알 수 없으므로 실험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화학반응식의 계수와 무관하다.
반응물의 종류가 둘 이상인 반응도 속도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A + B → C 반응의 경우 아래와 같다.
반응 속도식: rate = k [A]n [B]m
n 은 반응물 A의 반응 차수, m 은 반응물 B의 반응 차수이며, n + m 이 전체 반응 차수가 된다. (그림 3-(b) 경우 n = 1, m = 1 이며, 전체 반응에 대해서는 2차이다.)
2.4. 초기 속도법 (initial rate)
<그림 4>는 A의 초기 농도가 1.0 M(a), 0.75 M(b), 0.5 M(c), 0.25 M(d) 일 때, 시간에 따른 A의 농도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곡선의 순간(접선) 기울기 값이 해당 시점에서의 반응 속도이다.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응물의 농도가 점차 감소하고, 그래프 기울기는 점차 완만해진다. 반응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또한 초기 반응물의 농도가 묽을수록((a) → (d)) 접선의 기울기가 완만하며, 초기 반응 속도가 느리다.
결국, 반응 속도가 반응물의 농도에 의존(비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와 (c)의 초기 속도를 비교해보자. (c)의 초기 농도는 0.5 [M], (a)의 초기 농도는 1.0 [M]이므로, (a) 농도는 (c)의 두 배이다. 초기 속도 또한 그대로 두 배라면, 반응 차수는 1이다. A 농도와 반응 속도가 선형(linear)으로 비례한다.
1차 반응(농도 2배 → 속도 2배) rate = k [A]
만약, 초기 속도가 (a)가 (c)의 네 배였다면? 초기 기울기가 네 배 차이라면? 이는 반응 속도가 [A]2에 비례한다는 뜻이며, 반응 차수는 n = 2가 되어야 한다.
2차 반응(농도 2배 → 속도 4배) rate = k [A]2
이렇게 반응물의 농도를 일정 배율로 달리 한 뒤 초기 속도를 비교하면, 반응물 농도에 대한 몇 차 반응인지를 알 수 있다. 이를 초기 속도법(initial rate)이라 한다. 초기 속도법을 통해 결정한 반응의 차수에 따라 1차 반응, 2차 반응, 0차 반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화학 반응의 속도 - 끝 -
본문 <그림 3> 출처 바로가기 : chem.libretext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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