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발을 바닥에 내딛을 때 왼쪽 발바닥 바깥 부근에서 통증이 있었다. 발바닥 이곳저곳을 눌러보았지만, 바닥 어딘가가 직접 아프다기보다는 오히려 발등 쪽과 발날 쪽을 누르면 통증이 느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발을 다친 적도 없었고, 특별한 일을 경험한 것도 아니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냥... 나이들어서 그런가? 노화가 이유로 가장 그럴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흘렀고, 뭐, 조금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생각하고 생활했다. 병원까지 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아지거나,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2.
그러다, 이번 1회고사 기간 오후에 잠깐 시간이 났다. 와이프는 내가 발 아프다고 찡찡대는 게 신경 쓰였는지 병원에 꼭 다녀오라고 명령(아니 당부)했다. 병원은 그냥 무섭다. 그래도 치과보다는 덜 무섭고, 부러지거나 찢어진 건 아니니까 괜찮을거야 하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통증 및 재활의학과를 찾아갔다.
각가지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많았다. 어르신 분들이 많긴 했지만, 연령대도 다양했다. 무언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과 마주했다.
증상을 말씀드리자, 발 이곳 저곳을 눌러보신다. 학교에서 조퇴하고 바로 왔기에, 혹시나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대기하는 동안 화장실가서 발이라도 씻을 걸 그랬나 하는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발이 아닌 다리 이곳 저곳을 누르면서 "여기 아프죠? 그런데 여기는 안아프죠?" 연신 물었다.
나는 짧은 비명을 "윽... 윽...." 거리며, "네..."라고 대답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원인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는 없으나, 무언가의 이유로 발을 세워 걷는 습관이 만들어졌다고 하셨다. 스스로는 기억할 수는 없었어도 어떤 순간 발을 다쳤거나, 신발이나 환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발 바깥쪽을 이용하여 땅을 지지하는 습관이 형성된 것이 문제라고 했다. X-ray 촬영을 했을 때, 뼈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그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나 오랜 시간 서있는 직업이라면, 신발의 변화가 그런 문제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통증 전과 후에 바뀐 것은 신발 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디자인이든, 기능성이든 좋은 운동화만 찾아 신다가, 나이가 들고 관심 자체가 떨어지면서 그냥 비스무리한 디자인의 저가 라인업의 런닝화도 큰 차이 없다는 생각에 싼 런닝화로 바꾼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편하다는 이유로, 발보다 한 치수 큰 크록스를 끌고 다니기 시작한 시점도 비슷했다.
상황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 웃으며 말했다.
"아.... 40 넘고, 일상을 쳐내느라 바쁜데, 나이들어 가면서 좋은 거, 비싼 거 찾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누가 봐주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싶어서 그냥 비슷하게 생긴거 중에 싼 거, 편한거 위주로 골라 쓰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생각이 문제였던 거네요. 나이들어서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어야 하는거네요. 나이들어갈수록, 떨어지는 신체적인 부분을 보완하려면, 더 좋은 거 찾아 써야 하는 건데, 생각을 반대로 했네요. 재밌네요."
선생님께서 웃으며 답하셨다.
"아직, 몸이 망가지지 않으셨음에도, 어찌보면 마음에 병이 생긴거네요.ㅎㅎ 진통제 처방은 해드리지만, 일시적인거구요. 발을 잘 잡아줄 수 있는 신발들로 바꿔서 신으시기를 강력하게 권해드려요. 비싸도 그게 확실히 좋습니다. 통증이 있는 상황에서, 견고하게 발을 잡아줄 수 있는 신발들이 원래의 정상적인 자세를 찾는 것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저도 같은 신발만 여섯 켤레를 바꿔가며 신어요."
같은 브랜드, 같은 라인의 낡디-낡은 운동화 여섯켤레(정말 닳고닳도록 신은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가 진료실 한 편에 나란이 있었다. 아... 신뢰가 간다.
3.
진료를 마치고, 하루종일 어떤 신발을 신는 것이 좋을까 찾아봤다. 5년 전에 안경에 꽂혀서 하루 종일 안경만 검색했던 것처럼 하루종일 운동화만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순간 가격을 가리고 쇼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지금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중이다. 마음의 병은 발에 좋은 신발하나 사서 신으면, 치료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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