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4
내 소속 지역의 고등학교 대부분이 졸업식(및 종업식)을 12월 말에서 1월 초에 한다. 우리 학교는 12월 31일에 했다. 학사 일정이 빠듯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예정된 학사 일정 전체를 마무리한 이후부터 다음 학년도 시작까지 여유가 있고, 급하지 않아 새 업무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이러면 여름 방학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작년 말에 2025년도 학사 일정 결정 과정에서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에 다수가 찬성표를 또 던진 것을 보면, 나만 특별하게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올해도 별 일이 없다면, 2025년이 지나기 전에 졸업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보통, 2월에는 인사 발령이 난다. 2월 초에 새로운 근무지와 학교가 결정되고, 둘째 주에는 새 학년도 교육과정 만들기가 단위 학교별로 운영된다. 교육과정을 완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 전입해 오는 교사와 기존 교사들이 함께 만나 업무, 담임 및 학급 배정, 교과 시수 등의 조정 및 준비 작업을 한다. 이러한 개학 전 행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월 ~ 2월 초 인사자문위원 선생님들이 여러 차례 소집되고, 치열하게 회의해야 한다.
요즘은 특히나 새학기 업무와 담임 배정에 고민이 많다. 학교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량은 줄지 않지만(각종 의무화된 교육들이 학교 안으로 유입되어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지만), 교사 수는 정원감으로 매년 줄고 있다.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운영 부서가 있고, 주관하는 부장의 숫자도 정해져 있다. 학급이 있으니, 확보되어야 하는 담임 수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학령 인구 감소로 교사수는 매년, 한 명 이상씩 줄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시행 이후부터 학생 선택을 중시하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 편성이 주가 되면서 사회 및 과학 등의 선택 교과들의 주당 수업시수 증가와 다과목과 다학년 지도 문제는 예전부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은 새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첫해인데, 새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이러한 어려움이 주요 공통 교과들로도 확장되었다. 교사수는 계속 줄고, 학교에 남아 있는 선생님들로 간신히 부장 TO, 담임 TO를 채워도, 빈 구멍이 여전하다. 새로 전입 오시는 선생님들께 여러 부장과 담임을 요청하는 일은 예사다.
자리는 비었는데, 미발령이 난 교과는 급하게 기간제 선생님을 구하기 급급하다. 올해, 우리 학교도 지구과학 한 자리가 미발령이라 기간제 공고를 냈다. 업무량이나 교과목 수, 다학년 등의 매력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생기면, 채용이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업무 및 교과 부담을 간소화하려고 시수 조정에 고민했다. 부담은 기존 선생님들이 조금씩 덜어서 큰 리스크를 줄이려 한다.
올해 나는 17시간, 화학1, 과학과제연구, 고급화학을 담당하게 되었다. 학교에 화학 교사가 세 명이고, 전체 과학 교과 TO는 열두 명이나 되지만, 평균 시수는 16에 대부분 다과목이다. 세 과목, 17 시수이지만, 두 학년만 걸쳐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리고 과학부장을 맡게 되었다. 이전에서도 과학정보부장을 했던 적이 있지만, 학교 규모도 커졌고, 부서원의 수도 다르다. 학생수 1000명 이상 규모의 큰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팀으로 과학부를 운영하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 좀 걱정이다. 2월에 잠을 잘 못 자고, 평소 꾸지 않던 꿈을 꾸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요즘 과학부 자체가 없어지는 학교들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아무래도 과학중점학교로 큼지막한 사업들 여러 개를 운영하고 있고, 예산 규모와 외부와 연결된 다양한 교내 프로그램과 행사 덕분에 학교에서도 쉽사리 없애자고는 말을 못 하는 상황이라 다행(?)이다. 대신, 2월 내내 3월까지 제출해야 하는 각종 사업 계획서와 전년도 정산서, 보고서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3월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데, 한편으로는 차라리 빨리 왔으면 한다. 막상 시작하고 나면, 별 일 아닌 것들도 시작하기 전에는 걱정만 가득이다.(그래놓고, 막상 시작하면 7월 방학만 기다리고, 방학 끝나면 또 다시 1월만 기다린다.)
둘째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적잖게 걸리는 아이라, 걱정이 조금 되지만, 이사를 다니고 유치원을 옮겨다니는 과정에서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적응기가 짧아지는 것을 느끼며, 올해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위안을 삼는다.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길에, 뒷자석에 앉아 있던 둘째가 슬쩍 말을 건다.
둘: “아빠, 내가 말한적은 없는데, 초등학교에서 조금 걱정되는 것도 있어! 막, 발표하고 그런 건 조금 못할 거 같아.”
나: “아- 그래?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퀴즈같은거 냈을 때, 먼저 맞추고 대답하는 거 좋아하지 않아? 초등학교는 조금 걱정돼?”
둘: “대답하고 그런거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앞 나와서 소개하고, 발표하고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건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 유치원에서도 그랬어.”
나: “맞아 맞아! 아빠도 그래, 특히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처음할 때는 더 많은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거든! 그래서 엄마랑 아빠도 말은 안 했지만, 똑같이 걱정돼! 올해, 엄마도 아빠도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일들을 처음 해야 하거든! 3월이 천천히 왔으면 좋겠어!”
나: “그리고, 3월은 원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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