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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화학이야기

분자 요리 (Molecular Gastr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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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 연구회 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실험을 접하게 된다.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의 관심사와 지도하는 아이들 수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경험한 실험들이 약간 돌고 도는 느낌은 분명 있다. 완전히 새로운 실험을 생각해 내어 실제 현장에 적용 가능하도록 개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아주 오래전에 연구회 활동을 통해 '분자 요리'를 처음 접했다. 내가 속한 지역 교과연구회에서는 1 년 동안의 공통 주제를 정하여 활동했었는데, 당시 주제가 '음식 속 화학(food chem)'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탐구 준비에 소요되는 재료와 시간 대비, 활동으로 다룰 수 있는 화학 개념이 적고 교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편이어서 관심이 크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게을러서 준비 과정과 뒤처리가 귀찮은 것이 보다 결정적인 이유였겠지만....)

   그러다가 2021년, 후배 선생님 두 분께서 '분자 요리' 활동을 다시금 준비해 주셨고, 당시 활동 중에 궁금증이 생겨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블로그에 임시저장해 둔 채 시간이 흘러 흘러 현재(2023)에 이르렀다. 더 묵혀두었다가는 결국 끝맺음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생각난 김에 마무리를 시도해 본다.

당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던 분자요리 결과물, 다시 봐도 귤은 정말... 귤이다.

 

 

1. 분자 요리(molecular gastronomy)

  '분자 요리'는 동아리 활동이나 가벼운 과학 체험 부스 주제로 종종 다뤄진다. 또한 요리 관련 진로를 생각하는 학생들의 과학(화학) 말하기 수행평가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도대체 분자 요리란 무엇일까?

[JTBC] '쿡가대표'에서 최현석 셰프의 분자 요리 https://youtu.be/tXHlKvJKHa8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만나 만들어진 '분자 요리'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라고 정확히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이 한창 인기를 얻었을 때, 유명 셰프들이 출연해서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이 해당 용어를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는데 조금이나마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인 듯하다.

  분자 요리는'음식의 질감, 조직, 요리 과정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맛과 질감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1988년,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니콜라스 쿠르티(Nicholas Kurti, 1908-1998)와 프랑스의 물리화학자 에르베 티스(Herve This)가 처음으로 '분자 물리 요리학(Molecular and Physical Gastronomy)'이라는 개념을 사용했고, 10년 뒤인 1998년에 쿠르티가 사망한 이후, 조금 더 간결한 단어인 '분자 요리(Molecular gastronomy)'로 사용되어 왔다.

 

2. 구형화와 역 구형화

  분자 요리에서는 앞선 영상에서처럼 공 모양의 동글동글한 알맹이를 만드는 과정이 종종 등장한다. 주로 알긴산 나트륨(Sodium Alginate)수용성의 칼슘염(Ca2+, 젖산 칼슘, 염화칼슘 등) 조합을 사용해서 만드는데, 이를 구형화(spherification), 또는 역 구형화(reverse spherification) 과정이라 한다.

  구형화, 역 구형화 또는 구체화, 역 구체화 등의 용어로 표현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자어로 표현된 용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괜스레 어렵고, 의미가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영어 표현인 spherification이나 알맹이 만들기라는 표현이 더 직관적이고 쉽다.

  친환경 물병으로 알려진 오호(Ooho) 만들기 또한 구형화(또는 역구형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친환경 물주머니 Ooho [출처] http://www.oohowater.com/


  구형화
역 구형화에 사용하는 재료 물질은 같다. 구형화와 역 구형화의 차이는 용액의 혼합 과정(방향)에만 있다. 알맹이 내부에 갇힌 용액이 알지네이트 용액 기반인가, 칼슘 용액인가의 차이다.

  과량의 칼슘 용액에 "알긴산 나트륨 용액을 넣는 과정"이 구형화(a), 과량의 알긴산 나트륨 용액에 "칼슘 용액을 넣는 과정"이 역 구형화(b)이다. 어떤 용액을 어떤 용액을 향해 넣는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결과물의 구조와 질감이 달라진다.

(a) 구형화(spherification)와 (b) 역 구형화(reverse spherification)


  구형화(a, spherification)는 수조(bath) 내 과량의 칼슘 이온(Ca2+)들이 첨가되는 알맹이 용액(알긴산 용액) 쪽을 향하며, 알맹이 바깥 표면부터 막을 만들어 나간다. 만들어진 얇은 막은 입 안에서 쉽게 터지며, 내부 용액이 막 속에 갇혀있다가 '팍' 터져 나오는 식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알맹이 용액이 칼슘 이온에 너무 오랜 시간 노출된다면, 알맹이 내부를 향하는 칼슘 이온 수가 점점 많아지고, 막이 지나치게 두꺼워지기 때문에 내부 용액이 터지는 식감보다는 쫄깃한 식감의 알맹이에 더욱 가까워진다. 구형화는 용액의 pH가 낮은 산성(pH < 4) 조건에서는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제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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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구형화(b, reverse spherification)는 앞선 구형화 과정과 용액의 첨가 방향이 반대이다. 수조에는 과량의 알지네이트 나트륨 용액이 있고, 알맹이를 구성하는 용액에는 칼슘 이온이 포함되어 있다.

  알맹이의 막은 외부 수조의 알지네이트 용액에 의해 만들어진다. 막이 만들어지는 방향(칼슘 이온의 이동 방향)은 알맹이 바깥쪽을 향하며, 구형화에 비해 두꺼운 막이 만들어지는 편이다.

  역 구형화의 경우 점점 바깥쪽을 향하며 막이 생생되기 때문에 처음 알맹이 크기를 유지하기 좋지만, 알맹이 구성 용액이 너무 묽거나 크기가 지나치게 큰 경우에는, 알맹이 크기를 유지할 만큼의 견고한 막을 생성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내부 용액의 점도를 높이는 첨가제를 함께 넣어 요거트 같이 걸쭉하게 만들거나 알맹이 내부 용액을 미리 동결건조하여 모양을 유지하는 방법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역 구형화는 구형화 과정보다 비교적 pH 영향을 적게 받으며, 다양한 용액들을 알맹이로 만들 수 있다.

 

3. 막이 형성되는 원리

  그렇다면, 알맹이를 감싸는 얇은 막은 어떠한 원리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구형화든, 역 구형화든 핵심은 알긴산 나트륨(알지네이트) 용액에 있다. 알긴산 나트륨(Sodium alginate)이 물에 녹으면 음전하를 갖는 긴 사슬인 알지네이트 음이온과 나트륨 이온(Na+)으로 해리되며, 끈적하고 미끌거리는 질감의 용액이 된다.

알긴산의 구조, 카복실기(COOH)의 수소(H+)가 떨어지고 Na+ 이온와 결합한 것이 알긴산 나트륨이다.


  이러한 알긴산 나트륨 용액이 칼슘 이온(Ca2+)과 만나면, 해리되어 있던 나트륨 이온(Na+)이 칼슘 이온(Ca2+)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2가의 칼슘 이온이 각각의 알지네이트 가닥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가교) 역할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알지네이트 가닥들이 얼기설기된 그물 같은 막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1가의 나트륨 이온 두 개가 하던 일을 2가의 칼슘 이온 하나가 수행하면서 긴 알지네이트 사슬이 연결된다."

막이 형성되는 원리

 

 

 

 

 

 

분자요리

- 끝 -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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