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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화학이야기

반응의 자발성과 자유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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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

  기체는 진공 쪽으로 팽창하지만, 이미 퍼져나간 기체가 저절로 한쪽 방향으로 모여 압축되지는 않는다. 물에 풀어놓은 잉크 한 방울이 점차 퍼져나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퍼져나간 잉크들이 재차 한 지점에 모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뜨거운 물체와 차가운 물체가 접촉했을 때, 뜨거운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 쪽으로 열이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반대 방향으로 열이 이동해 뜨거운 물체는 더 뜨거워지고 찬 물체는 더욱 차가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면, 우리 주위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들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퍼진 잉크 한방울은 다시 모이지 않는다. @Pixabay by Sarah Richter


  반응 전보다 반응 후에 에너지(엔탈피)가 낮아지는 반응들은 주위에 열을 내어놓고,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위로부터 열을 흡수하면서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들도 있다. 소금이 물에 녹기 위해서는 약간의 열을 흡수해야하지만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 자체는 자발적이다. 따라서 반응 전후 물질의 엔탈피 변화만으로 반응의 진행 방향(자발성)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에 새로운 상태 함수가 필요하다.

 

2. 자발적 변화를 설명하는 엔트로피 법칙

  열역학 제 2법칙은 엔트로피 법칙이며, 자연의 변화가 우주 전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규칙성을 설명한다. 우주 전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변화가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엔트로피(entropy)'는 쉽게 말해 무질서도이므로, 우주 전체의 무질서함이 커지는 쪽으로 변하는 것이 자발적이라는 것과 같다. (잘 정돈된 방을 어질러 우주 전체의 무질서도 향상에 기여하고자하는 평소 나의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것...)

  우리에게는 절대 온도 단위, 캘빈(K, Kelvin)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 1824-1907)은 엔트로피 법칙을 "외부에 영향을 주지 않고, 흡수한 열()을 모두 일()로 바꿀 수 없다."라고 표현했고,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 1822-1888)는 "외부에 영향을 주지 않고, 열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전달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표현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같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의 척도이며, 기호는 S 로 표시한다. 단위는 [J/K] 인데, 물질 상태 그리고 이를 결정할 수 있는 온도와 압력 등의  변수에 의해 엔트로피는 달라진다.

  0 ℃, 1 기압 조건에서 물의 엔트로피는 63 [J/K] 인데, 얼음의 엔트로피는 41 [J/K]이다. 얼음의 배열이 물보다 규칙적이고, 물 분자들의 배치가 얼음보다 무질서하다. 얼음이 물로 변하면 22 [J/K] 만큼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그만큼 무질서해진다.

H2O (s ) → H2O (l ) , ΔS = S나중(water) - S처음(ice) = 63 - 41 = 22 [J/K]

얼음이 녹아 물이 되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Pixabay by Colin Behrens


  자연에서 반응 전후의 물질 엔트로피가(ΔS) 감소함에도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물질 주위의 엔트로피(ΔS주위)는 증가할 것이다. 우주 전체 엔트로피 변화는 계의 엔트로피 변화와 주위 엔트로피 변화의 합이며,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자발적 반응에서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증가해야하기 때문이다.

ΔS전체 = ΔS + ΔS주위

 

3. 자유 에너지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 변화(ΔS전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계의 엔트로피 변화(ΔS)와 주위의 엔트로피 변화(ΔS주위)를 모두 고려해야만 한다. 계의 엔트로피가 감소(ΔS < 0)하더라도 주위 엔트로피가 더욱 큰 폭으로 증가(ΔS주위 > 0)하면, 알짜 엔트로피는 증가(ΔS전체 > 0)하고, 해당 반응이 자발적으로 진행됨을 이해할 수 있다.

  '계(system)'는 정의상 우리가 관심 갖고 있는 대상이지만, '주위(surrounding)'는 관심 밖의 영역이다. 하지만, 반응의 진행 방향(자발성) 파악을 위해서는 관심 밖의 주위 엔트로피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조금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 관심 밖의 영역에 관심을 두어야 관심 대상의 반응 자발성을 알 수 있다면, 관심 밖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주위는 진정 관심 밖의 대상인가, 관심 밖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관심 대상이었던 것인가? )

  전체 엔트로피의 변화에 따라 반응의 자발성을 판단해보면 다음과 같다.

ΔS전체 > 0 (자발적) , ΔS전체 = 0 (가역적) , ΔS전체 < 0 (비자발적)

  만약, 주위 엔트로피 변화를 살펴보지 않고, 계의 변화만을 통해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 변화를 판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주위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해당 반응이 진행될지 그렇지 않을지 판단할 수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 온도(T )와 압력(P ) 조건에서는 이를 가능케하는 상태함수가 있다. 바로 깁스 자유에너지(Gibbs free energy)이다. 반응의 자발성을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이 새로운 개념은 기호 G 로 표시하는데, 화학 열열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미국의 물리학자 깁스(Josiah Willard Gibbs, 1839-1903)에 의해 제안된 개념이다.

윌라드 깁스 (J.W. Gibbs, 1839-1903) [출처] commons.wikimedia.org


  일정 압력 조건에서 계의 엔탈피 변화(ΔH)는 해당 과정에서의 열(qp, 계)과 같다. 만약, 반응이 진행되는 동안(엔탈피가 변화하는 동안) 주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엔탈피 차이에 따른 열량은 가역적으로 주위에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 

ΔH = qp,계 = - qp,주위

  만약, 계의 엔탈피가 감소하고(ΔH < 0), 해당 엔탈피 차이만큼의 열이 주위로 방출(qp,계 < 0)되면, 주위 입장에서는 열을 얻게되는(qp, 주위 > 0) 것과 같으므로, 계의 엔탈피 변화와 주위가 얻는 열 사이에는 다음과 같이 부호가 반대다.

ΔH- qp,주위

  계의 엔탈피 변화에 해당하는 열이 주위로 전달되는 동안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으므로, 주위 엔트로피 변화(ΔS주위)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엔탈피 차(ΔH)에 해당하는 열이 곧장, 가역적으로, 매순간 주위로 전달되고, 온도는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계와 주위 구분이 따로 필요없다.

ΔS주위 = + qp,주위 / T = - ΔH계 / T

ΔS전체 = ΔS + ΔS주위 = ΔS + ( - ΔH / T ) = (T ΔS + ΔH) / T

온도가 일정하므로, 분자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으며, 괄호 안의 항을 새로운 함수 G 로 정의한다.

ΔS전체 = - Δ(H - TS) / T

ΔS전체 = - Δ(G) / T

  새로운 함수 G H - TS 로 정의되며,  일정 온도 조건에서 미분하면, dG = dH - TdS 가 된다. 이를 적분하여 측정 가능한 양으로 바꾸어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ΔG = ΔH - T ΔS

    절대 온도(T )는 언제나 0보다 큰 값(양의 값)을 가지므로, 일정 온도와 압력에서 ΔS전체 와 ΔG 의 부호는 반대가 된다. 즉, ΔG가 큰 음의 값을 가질수록 ΔS전체는 큰 양의 값을 갖는다. ΔG의 부호를 통해 반응의 자발성을 판단하면 다음과 같다. 계의 자유에너지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반응은 저절로 일어난다.

ΔG < 0 (자발적) , ΔG = 0 (가역적) , ΔG > 0 (비자발적)

 

4. 왜 이름이 '자유'에너지일까?

  새로운 함수의 기호가 G 인 이유는 깁스(J.W. Gibbs) 때문이라 하더라도, 왜 하필 '자유' 에너지(free energy)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엄밀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깁스 에너지의 정의에는 어떤 변화 과정에서의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useful) 최대 일(wmax)의 양'의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할 수 있다.

G ≡ H - TS  , H ≡ U + PV
ΔG = ΔH - Δ(TS ) = ΔH - SΔT - TΔS , ΔH = ΔU + Δ(PV ) = ΔU + PΔV +VΔP
일정 온도(ΔT = 0)이면,
ΔG = ΔH - SΔT - TΔS , ΔG = ΔU + PΔV + VΔP - TΔS
일정 압력(ΔP = 0)이면,
ΔG = ΔU + PΔV +VΔP - TΔS


  즉, 일정 온도, 일정 압력 조건(ΔT = 0, ΔP = 0)에서 깁스 자유에너지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ΔG = ΔU + PΔV - TΔS (일정 온도, 일정 압력)


  그런데, 미소 내부에너지의 변화 ΔU = w + q 이며, 가역 과정이라면 w = w가역, q = q가역 = TΔS 관계에 의해 식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ΔG = w가역 + q가역 + PΔV - TΔS 
ΔG = w가역 + TΔS + PΔV - TΔS (일정 온도, 일정 압력, 가역 조건)


  계가 수행한 일(w가역)은 부피가 증가하는 팽창 일(- PΔV )과 전기적 일과 같은 비팽창 일(w가역,비팽창)로 구분되며, 

ΔG = - PΔV + w가역,비팽창 + PΔV (일정 온도, 압력, 가역 조건)


  계의 깁스 자유에너지 변화량(ΔG )가역 과정에서 계가 수행할 수 있는 최대비팽창일(w비팽창,max)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ΔG = w비팽창,max (일정 온도, 압력, 가역 조건)

 

 

반응의 자발성과 자유에너지
-끝-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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