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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화학이야기

용액의 증기압은 왜 용매보다 낮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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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주의

 


 

용액의 증기압은 왜 용매보다 낮아지는가?

"용액의 증기압 내림 설명"

 

1. 용액의 증기압

  가. 액체의 증기 압력

  진공 상태의 밀폐 용기에 물(H2O)을 반쯤 채우면, 물은 금세 증발하여 나머지 공간을 수증기로 가득 채운다. 이 수증기는 용기 벽면과 물 표면에 수없이 부딪치며, 압력을 가한다. 이를 물의 증기압, 증기 압력(vapor pressure)이라 한다.

증기 압력 : 닫힌계의 액체와 그 증기가 동적 평형 상태를 이루고 있을 때, 해당 증기가 가하는 압력

  주위 온도가 높아지면, 물은 더 많이 증발한다. 벽면에 부딪치는 수증기 입자 수가 이전보다 많아지고 자연스레 증기 압력도 커진다. 온도가 높아지면, <그림 1>처럼 증기 압력은 급격히 커진다.

그림1. 온도에 따른 액체의 증기압 곡선 [출처] Oxyoby Principles of Modern Chemistry, 7th, Fig 10.17.


  20 ℃, 물(H2O)의 증기 압력은 0.023 [bar]이고, 에탄올(C2H5OH)은 0.0583 [bar], 아세트알데하이드(CH3CHO)는 0.987 [bar]이다. 같은 온도에서 증기 압력이 크다는 것은 해당 액체의 증발이 잘 일어난다는 뜻이다. 세 물질 중에 아세트알데하이드의 휘발성이 가장 크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Vapor_pressure

 

Vapor pressure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ump to navigation Jump to search Pressure exterted by a vapor in thermodynamic equilibrium The microscopic process of evaporation and condensation at the liquid surface. The pistol test tube experiment. The tube conta

en.wikipedia.org


  증발이 잘된다는 것은 표면에 위치한 액체 분자들이 주위 분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이겨내고, 액체 상(phase)을 벗어나기 쉽다는 뜻이다. 따라서 액체 분자 사이 힘이 강할수록 증발하기 어렵고, 작은 증기 압력을 갖는다. 분자 사이 강력한 수소 결합을 하는 물(0.023)과 에탄올(0.058)이 아세트알데하이드(0.987)에 비해 상당히 낮은 증기 압력을 갖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나. 용매와 용액

  순수한 액체가 아닌 혼합 용액의 증기 압력은 어떨까? 용매와 용액은 증기 압력 차이가 있을까? 용액의 증기 압력은 커질까? 작아질까? 그대로일까? 

  용액은 용매와 용질이 섞인 혼합물이다. 용질이 없다면, 용매는 순수한 액체일 뿐이다. 즉, 용매에 용질이 첨가되었을 때, 용매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면 되겠다. 용질 첨가로 인해 입자 간 상호작용이 기존 순수 액체일 때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면 되겠다.

그림 2. 순수한 액체와 혼합물인 용액

 

  다. 용액의 증기 압력

  용질이 용매에 첨가되면, 순수 용매일 때와 환경이 달라진다. 용액은 순수 용매에 비해 복잡한 상태다.

  순수 액체(용매)에는 용매-용매 상호작용만 존재하며, 이 상호작용 크기에 따라 증기 압력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러나 혼합 용액에는 기존의 용매-용매 상호작용 외에도 용질-용질 상호작용, 용질-용매 상호작용이 추가적으로 있다. 순수 액체(용매) 환경보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첨가된 용질 종류에 따라 용질-용매, 용질-용질 상호작용 크기 또한, 제각각 다를 것이기에 모든 경우의 용액 성질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림 3. 순수 액체와 용액의 입자간 상호작용

  이에, 이상적인 용액 상부터 논의하여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각의 실제 기체 사례와 세부 성질을 다루기 전에 이상 기체부터 정의하며 시작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용매(A)와 용질(B)이 혼합되어 용액을 구성할 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용질-용질(B-B), 용질-용매(B-A) 상호작용 크기가 기존의 용매-용매(A-A) 상호작용 크기와 차이가 없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첨가된 용질(B)의 분자 구조와 성질이 용매(A)와 유사할 때 가능한데, 이런 용액을 이상 용액(ideal solution)이라 한다. 분자 구조가 비슷하고, 분자량도 14 밖에 차이나지 않는 벤젠(C6H6)과 톨루엔(C6H5CH3) 혼합물은 이상 용액에 가깝다.

이상 용액에서의 입자 간 상호작용용질-용질 상호작용 = 용질-용매 상호작용 = 용매-용매 상호작용


  이상 용액 속 용매 입자(A)는 주위 존재하는 용질 입자(B)를 구별해내지 못한다. 용질 입자(B)가 기존 순수 액체상에서의 용매 입자(A)와 똑같은 크기의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용액 속 용질 입자는 용매인 척하고 있다. 이에 이상 용액의 에너지(엔탈피)는 순수한 액체(용매)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H용액 = H용매(액체))

  따라서 용질(B)이 용매(A)에 용해되어 이상 용액을 만들 때는 열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않는다. (ΔH용해 = 0)

그림 4. 이상 용액에서의 입자간 상호작용


  프랑스의 화학자 라울(François-Marie Raoult, 1830-1901)은 용액의 증기압(PA)이 순수한 용매의 증기압(PA˚)보다 낮아짐을 관찰하였다.
이를 라울의 법칙 (Raoult's Law)이라 하며, 이상 용액은 모든 몰분율 구간에 대해 라울의 법칙을 만족하는 용액이다.

용액의 증기압(PA) = 용매의 몰분율(XA) * 순수 액체의 증기압(PA˚)     [ Raoult's Law ]

[출처] Atkins, Chemical Principles 5th, Fig 9.27.


  용액의 증기압(PA)은 용매 몰분율(XA)에 비례했으며, 증기압 내림(ΔPA) 크기는 용질 몰분율(XB)이 클수록, 진한 용액일수록 크게 나타났다.

혼합 전후 증기압 변화(ΔPA) = 용액의 증기압(PA) - 순수 액체 증기압(PA˚) = XAPA˚ - PA˚ = - XBPA˚

그림 5. 용매(파랑)와 용액(빨강)의 증기압 곡선 [출처] Principles of Modern Chemistry, 7th, Fig 11.11

 

 


 

2. 용액의 증기압을 설명하는 방법

  그렇다면, 용액 증기압은 순수한 용매보다 왜 작아지는 것일까?

  증기압 내림은 열역학적 근거를 갖는다. 이에 증기압 내림은 열역학적 물리량인 화학 퍼텐셜(= 몰 깁스 자유에너지) 또는 엔트로피(무질서도)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가장 매끄럽다. 용액의 증기압 내림을 설명하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가. 표면 입자 모형 (가로막기 모형)

  대부분의 고등학교 화학2 교과서에서는 용액의 증기압 내림을 '표면 입자 모형'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표면 입자 모형'은 용액 표면에 일정 비율로 존재하는 용질이 용매 증발을 방해하여 용액 증기압이 순수한 용매보다 낮아진다고 설명한다. 이 모형은 학생들이 비교적 받아들이기 쉽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괜찮은 비유 모형으로 사용된다.

- 비휘발성 용질이 녹아 있는 용액의 증기 압력이 순수한 용매의 증기 압력과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용액에서는 용매 입자와 용질 입자 사이에 인력이 작용한다. 그리고 순수한 용매와는 다르게 용액에서는 용질 입자가 용액 표면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용질 입자가 용매 입자의 증발을 막아 용액의 증기 압력이 순수한 용매의 증기 압력보다 낮은데, 이러한 현상을 증기 압력 내림이라고 한다. 용액의 농도가 진해지면 증기 압력은 더욱 낮아진다.
[출처] 고등학교 화학2(2015 개정), 비상교육, 43p 그림2-2

- 고등학교 화학2(2015 개정), 비상교육, 43p

 
  그러나, 몇 가지 반박을 통해 '표면 입자 모형'은 증기압 내림을 설명하는데 완전치 않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먼저, 용질과 용매가 용액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용질은 용매에 둘러싸여 안정화된다. 이를 용매화(solvation)라 한다. 용매화된 용질은 표면에 드러난 채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용매화에 의한 어떤 추가적인 안정화 없이 혼합되어 용액을 만들었고, 용질이 용액 표면에 드러난 채 존재할 수 있다 해도, 용액 표면 일부를 용질 입자가 가렸기 때문에 증기압이 낮아진다는 단순한 설명은 조금 부족하다.

  만약, 표면 일부를 용질이 가로막은 것이 증기 압력이 낮아진 주된 원인이라면, 이는 용액이냐 용매냐의 차이를 넘어서 담겨있는 용기의 모양(액체 표면적)에 따라 증기 압력은 수시로 달라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또한 가려 막는 용질의 종류(크기, 분자량) 등에도 영향받아야 할 것이기에 총괄성(colligative property) 개념도 설명하기 어렵다.

  * 주절주절... 이전 교육과정(2009 개정)까지는 단원 전개상 뒷부분일지라도 '반응의 자발성과 엔트로피' 개념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표면 입자 모형'과 함께 '열역학적인 설명(엔트로피를 통한 설명)'을 함께 제공하곤 했다. 하지만, 현재 교육과정(2015 개정) 상으로는 반응의 자발성이 완전히 빠져서 이마저도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과 고민 과정이 필요해졌다. 사실, 반응의 자발성이 진로선택 과목인 화학2에서 빠져, 고급화학에 포함되어야만 할만큼의 상위 개념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해버렸다. 뭐, 진로 선택 교과목의 취지에서 벗어나지는 않으니...


나. 표면 입자 모형의 속도론적 접근 [1]

  사실, 위의 표면 입자 모형을 속도론적으로 접근하면, 증기압 내림을 설명할 수 있다. 용질 입자가 표면을 가렸기 때문에 증기압이 감소한다는 설명은 증기압 내림의 원인을 표면적 감소 때문이라고 오해할 수 있기에, 되도록 속도론적 접근을 하는 것이 좋겠다.

  1) 평형 상태에 도달한 순수 용매와 증기가 있다고 하자. 평형 상태에서 액체의 증발 속도와 증기의 응축 속도는 같아 겉보기에 아무런 변화를 관찰할 수 없다. <그림 6, 용매 평형 상태>

  2) 이 액체에 비휘발성(고체) 용질만 첨가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순수했던 액체는 순식간에 혼합 용액이 되었으며, 첨가된 용질 입자는 용매 사이사이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용질의 용매화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용질은 용액 표면에 일정 비율 자리 잡는다. 자연스레 표면에 존재하는 용매 비율은 줄고, 순수한 액체일 때보다 증발 속도가 느려진다. 

  용질 첨가로 인해 순수 액체는 혼합 용액으로 변하지만, 증기 환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따라서 증기의 응축 속도는 그대로다. 용액의 증발 속도는 느려졌지만, 응축 속도는 그대로니, 순간 평형 상태가 깨져 비평형 상태가 되었다. 응축이 우세해졌다. 응축이 우세한 비평형 상태이므로, 증발되는 용액 입자수보다 응축되는 증기 입자수가 많다. <그림 6, 비평형 상태>

  3) 용액의 증발 속도와 응축 속도가 같아질 때까지 증기 입자수는 줄어들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흘러 새로운 평형에 도달한다. 새로운 평형에서는 기존보다 증기 입자수가 적다. 증기 압력도 작다. 순수한 액체의 증기 압력보다 용액(용매)의 증기 압력이 작다. <그림 6, 새로운 용액 평형 상태>

그림 6. 순수 용매의 평형 상태 → 용질 첨가에 의한 용액-증기 비평형 상태 → 용액의 새로운 평형 상태

  


다. 열역학적 설명 (엔트로피를 통한 설명)

  용액의 증기압 내림은 화학 퍼텐셜(≒몰 깁스 자유에너지) 또는 엔트로피(무질서도) 개념을 사용해서 설명하는 것이 가장 매끄럽다. 발적 변화(반응)는 엔탈피와 엔트로피에 의해 결정된다. 엔탈피가 작아질수록(ΔH < 0), 무질서도가 증가할수록(ΔS > 0) 자발적 변화에 유리하다. 그리고, 주위 온도(T )에 영향받는다.

  이를 정리하여 나타낸 것이 깁스 자유에너지 변화(ΔG )다.

ΔG = ΔH - TΔS

  예를 들어, 엔탈피가 작아지면서(ΔH < 0), 무질서도까지 증가(ΔS > 0)하는 반응이 있다면, 그 반응의 깁스 자유에너지 변화는 무조건 ΔG < 0 이며, 온도에 무관하게 자발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증발(기화) 과정에 적용해보자.

  액체 → 기체 변화는 열을 흡수해야 하는 흡열 과정이다. 즉, ΔH > 0 이다. 이 반응은 엔탈피 측면에서는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액체 → 기체 변화는 물질의 무질서도가 매우 크게 증가하는 과정이며, ΔS > 0 이다. 주어진 온도(T )에서의 엔트로피 증가 요인(ΔS )이 엔탈피의 불리함(ΔH )을 넘어서는 만큼 기화 과정이 자발적이게 된다.


  앞서 1-(다)에서, 이상 용액은 용매-용질, 용질-용질, 용매-용매 상호작용의 크기가 모두 동일하며, 순수한 액체(용매)와 용액 환경에서 엔탈피 차가 없다고 했으니, 기화 과정의 엔탈피 변화량(ΔH기화 = ΔH증기 - ΔH용매(또는 용액)) 또한 차이가 없다.
따라서 용매에 용질을 첨가하여 이상 용액을 구성한 경우에는 기화 과정에서의 엔탈피 측면이 더 유리해지거나 불리해지지 않는다.

ΔH기화 = H기체 - H액체(용매 또는 용액)       H용매 = H용액 (단, 이상 용액)


  결국, 용질 첨가 효과는 엔트로피(S )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용액은 순수 용매에 비해 무질서한 상태(S용매 < S용액)이므로 기화 전 엔트로피가 크다. 자연히 용액이 기화하는 과정에서 얻는 엔트로피 이득(ΔS기화)이 순수 용매보다 작다. 따라서, 용액의 기화는 순수 용매보다 덜 자발적이다. 기화가 좀 덜 되고, 증기 압력은 좀 낮아진다. <그림 6>

ΔS기화 = S기체 - S액체(용매 또는 용액)       S용매 < S용액 (단, 이상 용액)

그림 6. 용매, 용액의 무질서도와 기체의 무질서도

 

  분자 수준에서 볼 때, 라울 법칙(용액 내 용질 몰분율에 비례하여 용액 증기압이 내리는 현상 )이 성립하는 것은 용액의 엔트로피에 미치는 용질 효과 때문이다. 순수 용매에서는 (용매) 분자들이 특정한 무질서도를 가지며, 이에 해당하는 엔트로피 값을 갖는다. 그리고 증기 압력의 크기는 이 계와 주위(용매)가 보다 높은 엔트로피(기체)에 도달하려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용질과 용매가 함께 존재하는 용액에서 임의로 입자 하나를 택했을 때 그것이 반드시 용매 입자라고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용액 상태는 순수 용매(액체) 상태보다 더 무질서하다.
  이와 같이 용액의 엔트로피(S용액)는 순수 용매의 엔트로피(S용매(액체))보다 높기 때문에 기화(액체→기체)를 통해 더 높은 엔트로피를 가지려고 하는 경향(ΔS )이 순수 용매일 때보다 크지 않다. 바꿔 말하면, 용액의 증기 압력은 순수 용매일 때보다 낮다. 

- Atkins 물리화학 10th

 

 

용액의 증기압 내림 -끝- 

 

 


* 참고문헌

[1] 윤희숙, 정대홍, 끓는점 오름 현상에 대한 학생, 예비교사, 화학교사의 개념 분석, 한국과학교육학회지, 26권 7호, pp. 805 812(2006. 12)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 중 오타나 오류 등이 있는 경우 댓글로 알려주시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정/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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