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끼리끼리 녹인다." 개념을 가르치기 위한 용매 추출 시범 실험
[리뷰] "끼리끼리 녹인다." 개념을 가르치기 위한 용매 추출 시범 실험
A Colorful Solvent Extraction Demonstraction for Teaching the Concept of "Like Dissolves Like"
0. 들어가기
이번 여름 방학에도 과학교사 실험직무연수에서 한 꼭지를 맡게 되었다. 방학 중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거절하고 더 적합한 다른 분을 추천하고자 계획했으나, 어찌어찌하다보니 다시 연수를 준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막상 주제를 정하고, 원고를 보냈는데, 연수일이 다가오고 2 시간을 채우려고 하니 머릿속이 정리가 안된다. 이번 글쓰기는 연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생각 정리 목적이 크다.
작년 초, 고등학교 과학교사 실험직무연수에서는 철-아세틸아세토네이트 착물을 합성(254)하고, 분광학 데이터를 얻고, 측정하여 합성 결과를 확인해보는 구성을 시도했었는데, 이번에는 연수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 모두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시기에 주제 선정에 다소 고민이 되었다.
교사는 아무래도 현재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것, 가르치는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것에 많은 관심이 쏠려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방학 중 개인 시간을 할애하여 연수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새롭게 적용할만한 아이템이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다방면으로 반짝반짝하신 분들이 많으며, 이러한 이유로 바삐 연수 스케쥴을 소화하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히 신경쓰고자 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용 요소는 중학교 교육과정을 뒷받침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각을 드릴 수 있는 주제"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나는 중학교 근무 경험이 없고 연수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대한 중학교 교육과정과 관련이 깊으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주제를 찾아야 하는데 최종적으로 맡게 된 단원은 혼합물의 분리 단원이었고, 선택한 주제는 추출(extraction)이다.
용매 추출은 두 용매에 대한 용질의 용해도 차이, 섞이지 않는 밀도 차이를 갖는 두 용매를 사용한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의 밀도차, 용해도 차를 이용하는 혼합물의 분리법이라고 나름 의미부여해보았다.
1. 주제 선정
사실, 이번 실험 직무연수 준비와 무관하게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논문(?)이 한 편 있었다.
A Colorful Solvent Extraction Demonstration for Teaching the Concept of "Like Dissolves Like"
"끼리끼리 녹인다." 개념을 가르치기 위한 컬러풀한 용매 추출 시연
2022년 8월 화학교육학술지(Journal of Chemical Education)에 실린 논문인데, 저자는 David Dobberpuhl, Lydia Johnson, Bruce Mattson 이다. (물론, 누군지는 모르는...)
이 논문은 블로그에 용매 추출과 관련된 글(293)을 쓰고, 썸네일로 쓸만한 이미지를 찾다 우연히 발견했다. (결국, 이미지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해당 논문 전체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없어서, 학내망에서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한 졸업생의 도움을 받았다. 전체 분량이 4 페이지로 짧은 편이고, 내용 수준과 실험 재료가 일반 중고등학교 환경에서 충분히 시도해볼만하다는 생각이 한번 쯤 정리해두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블로그에 남겨두고자 한다.
2. 리뷰
2-1. 소개
대부분의 화학 교과서에서는 용액 관련 챕터가 있는데, 해당 파트에서는 다양한 분자 사이 힘에 대해 다루게 된다. 논문은 황산 구리 수용액과 메틸레드 지시약을 이용한 용매 추출에 관한 시범 실험이다.
황산 구리(CuSO4)는 물에 매우 잘 녹는데, 그 이유는 구리 이온(Cu2+)과 물 사이의 이온-쌍극자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반면 황산 구리는 1-펜탄올과 같은 대부분의 무극성 용매에는 잘 녹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메틸 레드 지시약은 알코올 류에 상당히 잘녹는다. 메틸 레드의 구조를 살펴보면, 수소 결합할 수 있는 카복실기(COOH)도 있고, 비공유 전자쌍을 갖는 세 개의 질소 원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에 극히 소량만 용해되는 특징이 있다.
2-2. 시약 및 실험 준비
약 2.8 x 10-5 M 농도의 메틸 레드 수용액을 만든다. 수용액은 메틸레드 나트륨 염(MW = 291.29 g/mol) 8 mg 을 1 L에 녹여 만들 수 있다. 이 용액에 0.1 M HCl 수용액을 pH < 4.4 가 될 때까지 넣어준다. 메틸 레드 지시약은 pH < 4.4 미만에서 붉은색을 띤다.
* 시중에 메틸레드 지시약 용액을 구입하는 것도 좋다. 용액의 용매에 대한 정보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용액 제조 과정이 생략되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실제 수업에서는 용액의 pH 정도만 조절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 0.4 M의 푸른색 황산구리 수용액을 만든다. 약 5 g의 황산구리 오수화물(CuSO4˙5H2O, MW=249.685 g/mol)을 50 mL의 물에 녹인다.
1-펜탄올은 1 L의 물에 22 g 정도만 녹는 매우 제한된 용해도를 갖는다. 이에 물로부터 용매 추출하기에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냄새는 별로다.)
2-3. 시연하기
붉은색 메틸레드 용액과 푸른색 황산 구리 용액을 각각 20 mL 정도씩 취하여 차례로 분별 깔때기에 넣는다. 두 용액은 섞여서 보라색 용액을 이룬다.
이후 20~25 mL의 1-펜탄올을 조심스럽게 첨가하면, 메틸레드-황산구리 수용액의 위에 투명한 유기 층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펜탄올의 밀도가 수용액의 밀도보다 낮고, 두 액체가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 분별 깔때기를 마개로 막고, 격렬하게 몇 초간 흔들어준다. 그리고, 스탠드에 고정하여 기다린다. 그러면, 몇 초 이내에 1-펜탄올이 수용액 층과 분리되기 시작하는데, 이 때는 수용액 층에는 황산 구리(CuSO4)만 남아 용액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수용액 층에 황산구리와 함께 섞여있던 메틸 레드가 1-펜탄올 층으로 이동하여 유기층의 색깔을 주황색으로 변화시킨다.
2-4. 논의
시범 실험은 학생들의 이해력을 향상시키는데 강력한 시각 자료가 되어줄 수 있으며, 실험실에서 더욱 심화된 주제를 소개하는데 활용될 수도 있다. 위 시범 실험은 학생들로 하여금 분자 사이의 힘, 용액의 형성, 분자의 극성에 따른 "끼리끼리 녹인다" 개념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리 이온과 물 사이의 이온-쌍극자 힘, 메틸 레드 분자가 1-펜탄올을 선호하는 현상은 비극성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크게 작용하는 경우를 보여줄 수 있다. 해당 실험은 산-염기 평형에 대한 별다른 지식 없이 용액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
해당 실험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사전에 "분자량이 큰(사슬이 긴) 알코올 대부분이 물에 섞이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우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분자의 극성에 따른 용해도 개념인 "끼리끼리 녹인다"를 학습한 이후가 좋다.
3. 제언
실제로 재료를 구입하여 학생들과 방과후에 실험을 해봤었다. 당시에 정신없이 진행하여 사진을 남겨두지 않은게 아쉽긴 하지만, 대체로 논문에 실린 것과 거의 똑같은 결과를 얻었다. 사전 조사를 통해 1-펜탄올이 독특한 냄새를 갖는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냄새가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는 것은 직접 경험을 통해 알았다.
해당 실험을 중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직접 적용하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일부 당겨와야 하고, 중학교 2학년에서 혼합물의 분리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지만 "용매 추출" 개념은 발달 단계상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중학교 선생님들이 연수 당일 어떠한 피드백을 주실지, 그리고 이후 현장에 여러 형태로 적용하실지 안하실지, 적용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점과 상황 등을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짐작이 안된다.
그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름의 이유를 붙여 변명하자면, 혼합물의 분리 단원에서 물과 기름의 밀도 차에 의한 분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분별 깔때기도 교과서에서 접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모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동아리 활동이나 과학 탐구에 별도의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 심화과학반, 영재교육 등에서 한 번쯤 소개할만하고, 활용해 볼만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근거로 소개해 보았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