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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화학이야기

엔탈피 (Enthal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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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233. 계와 내부 에너지

 

계와 내부 에너지 (System & Internal Energy)

계와 내부 에너지 System & Internal Energy 1. 계와 주위 열역학(Thermodynamics)에서는 에너지의 전환에 관심 갖는다. 화학에서는 물질 변화 과정에서 에너지는 어떻게 관여하고, 달라지는지에 대해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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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탈피 (Enthalpy)

"일정 압력 조건에서의 반응열"

 

1. 정적 과정에서의 내부 에너지 변화

  이전 글을 통해 우리가 관심을 갖는 대상을 계(system)로 정의하고, 그리고 그 계의 고유 에너지를 내부 에너지(internal energy)라 한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내부 에너지의 절대량은 알 수 없지만, 변화량(Δ)은 측정이 가능하다. 

  내부 에너지 변화는 무질서한 열(heat, q )과 질서 있는 일(work, w )의 형태로 일어나며, 강철 용기와 같이 부피 변화가 제한된 조건(ΔV = 0)에서는 모든 변화가 열(ΔU = qv)로 나타나기 때문에 온도 변화만을 측정(qv = CvΔT )하여 내부 에너지 변화(ΔU )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ΔU = qv = CvΔT (일정 부피 조건)

  그러나 대부분의 화학반응은 강철 용기가 아닌 플라스크에서 진행되며, 일정 부피(정적) 조건보다는 일정 압력(정압) 조건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정 압력 조건에서 반응 전후, 물질의 고유 에너지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온도 변화를 통해 발생한 열량을, 부피 변화를 통해 행해진 일을 모두 측정해야 한다. 이는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2. 반응열과 엔탈피

  앞서 말했듯 화학 반응은 일정 부피가 아닌 일정 압력 조건(ex 대기압 조건에서 공기와 맞닿은 환경)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정 압력 조건에서 물질이 변화하면, 열(q )의 출입이 발생하고, 동시에 외부압에 대한 일(- pΔV )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반응 과정에서의 열과 일을 모두 측정해야 내부 에너지 변화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만약, 일정 압력 조건에서의 반응 전후 온도 변화(Δ)만 측정한다면, 반응 과정에서의 열(qp)만 측정한 것이다. 이 반응열은 내부 에너지 변화량(ΔU )을 온전히 나타내지 못하지만, 에너지 변화량(Δ) 일부를 측정한 것은 맞다.

  이 에너지 변화량을 엔탈피(Enthalpy, H )라는 새로운 에너지 개념으로 정했다. 엔탈피 변화량(ΔH )일정 압력 조건에서의 반응열(qp)이다. 엔탈피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enthalpos'에서 유래했는데, 'en'은 '안쪽'이라는 뜻이며, 'thalpo'는 '데운다'는 뜻이다.

ΔE  =  qp  =  ΔU - w  =  ΔH

 위의 엔탈피 변화량(ΔH )을 바탕으로 엔탈피(H )를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H  ≡  U + PV

ΔH  =  ΔU + Δ(PV )  =  q - PΔV + Δ(PV )
ΔH  =  q - PΔV + VΔP + PΔV  =  q + VΔP

일정 압력 조건이라면? ΔP = 0  ,    ΔH  =  qp

 

3. 내부에너지와 엔탈피

  물질 B의 내부에너지가 물질 A 보다 100 J만큼 작다고 하자.

A → B      ΔU = UB - UA = - 100 J

  A가 B로 완전히 변하는 반응이 진행되면, 계의 내부 에너지는 100 J만큼 낮아진다. A로 가득 찼던 계가 B로 가득 채워지며, 100 J의 에너지가 남는다. 이 여분의 에너지는 주위를 향한다.

  이 100 J은 열(q ) 또는 일(w )의 형태로 주위에 제공(-)된다. 주위 입장에서는 일 또는 열을 제공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100 % 일로 전환(q = 0)된다면 100 J 만큼 피스톤을 밀어낼 수 있을 것이며, 100% 열로 전환(w = 0)된다면, 100 J에 해당하는 열량만큼 주위 온도가 증가할(ΔT ) 것이다. 일과 열의 비율은 반응 경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일정 압력 조건에서 A → B 반응이 진행되고, 주위로 열(q )을 80 J만큼 방출(qp = - 80 J)했다면, 여분의 20 J만큼 부피 팽창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내부 에너지 변화가 - 100 J임을 알고 있을 경우에 말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의 내부 에너지를 알던 모르던, 새로운 에너지 개념의 정의상 물질의 엔탈피 변화(ΔH )는 - 80 J이다. 일정 압력 하에서 계가 주위에 행하는 일의 기여분(에너지 감소분) 자체를 신경 쓰지 않는다. 반응이 일어나면서 80 J의 여분 에너지(엔탈피)는 열(q )의 형태로 주위를 향하고, 20 J만큼 주위에 일(w )했겠지만, 계가 행한 일 20 J에 전혀 관심이 없다.

ΔU + Δ(PV ) = ΔH = - 100 + (20) = - 80 J

  따라서 일정 압력 조건에서 엔탈피 변화만으로 반응계의 에너지 변화를 다룬다는 것은, 내부 에너지보다 항상 적은 양의 변화(반응열)만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4. 물건 가격과 부가세

  뜬금 없을 수 있겠지만, 미국과 한국에서의 물건 가격 이야기를 하려 한다.

  미국 상점에 붙어있는 물건 가격(price)은 순수 물건 값어치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각 주(state) 마다 세율(tax rate)이 다르고, 그에 따라 물건에 붙는 세금(tax)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여행을 하다가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한다면, 구매자는 물건에 붙어있는 '가격'에 '세율에 따른 세금'을 더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한국식 가격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한 일이다.

미국의 주별 세일즈 택스 [출처] https://taxfoundation.org/2021-sales-taxes/


 우리 나라는 구매자가 세율을 따로 계산하여 물건 값어치에 세금을 더한 금액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그냥 고지된 물건 가격이 곧 세금이 포함된 금액이다. 카드 명세서를 봐야 '물건 값어치'와 '세금'이 각각 얼마인지 알 수 있다.

물품가액과 부가세가 계산되어 있지만, 우리는 합계 금액만 관심 갖는다.


  예를 들어, 지난번 나는 59,000 원 어치 주유를 하고 카드로 결제했다. 주유 영수증에는 53,636 원이 물품가액으로, 5,364 원이 세금(부가세)이라고 쓰여있었다. 우리는 굳이 "기름의 순수 가격은 53,636 원이었고, 거기에 세금이 5,364 원이 붙었어!"라고 구분하여 받아들이지 않으며, 각각이 얼마인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내가 지불한 금액 = 물건 값어치 + 세금 = 53,636 + (5,364) = 59,000 원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세금을 포함한 금액(지불액)을 물건 값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격을 결정하는 판매자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시스템에 따라 미국인과 한국인은 물건 가격(price)에 대해 조금은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 미국 상점에서의 물건 가격은 물건 자체 값어치 성격이 크지만, 한국에서는 구매자가 지불해야 할 금액에 가깝다. 

 



  이런 예시는 어떨까? 

  미국 상점에 갔는데, 사고 싶은 물건에 10$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물건을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10$를 카드로 지불했다. 카드 리더기가 설치되어 있는 지역(주)에 따라 자동으로 세율에 따른 세금이 계산되고, 카드 소유주의 세금 납부 계좌에서 별도 세금 1$가 빠져나간다.

  분명, 눈앞에서 카드로 10$, 안 보이는 세금 납부 계좌에서 1$가 차감되어 총 11$가 빠져나간 셈이지만, 카드 명세서에는 물건 값을 위해 결제된 10$만 고지된다. 우리는 순수하게 물건 가격으로 10$만 지불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게 어떻게 물건 값으로 10$만 지불한 것이냐고 반박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계좌에서 물건 구입 명목으로 1$가 더 빠진 것이니, 물건 값으로 11$를 지불했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관점의 문제다. 내 금전 자산의 입출금 관점에서 생각하면 11$를 지불한 것이고, 순수하게 물건 값어치 관점에서 생각하면 10$를 지불했다. 둘 다 맞다.

 

5. 마치며

  우리 나라의 가격 시스템에서는 물건 가격(11$)에 세금(1$)이 언제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건 고유의 값어치(10$)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지불하는 금액(11$)에만 관심 있다.

  미국, 우리나라와 다른, 눈앞의 카드 명세서에는 물건값(10$)만 알려주고 개인 계좌에서 부가세(1$)가 별도로 차감되는 시스템 속에 놓인다면, 오히려 물건 고유 가격에 익숙해질 수 있다. 부가세(1$)는 물건 값어치와 관계없이 구입 과정에서 일정 비율로 항상 붙는 비용이기 때문에 이 비용이 빠져나가는 것에 무덤덤해질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10$ 값어치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부가세 1$를 포함하여 11$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은 같지만, 구매자가 어떤 금액에 관심을 두는지에 차이가 생긴다.

  내부 에너지 변화(ΔU )와 엔탈피 변화(ΔH )는 모두 반응 전후 계의 에너지 변화를 말한다. 구매자가 지불한 전체 금액에 집중한 것이 내부 에너지 변화(ΔU = - 11$)라면, 물건 고유 값어치에만 집중한 것이 엔탈피 변화(ΔH = - 10$)라 비유할 수 있겠다.

  엔탈피 변화를 다룬다는 것은 일정 압력 조건에서 일어나는 일(팽창일)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마치 세금이 몇 %가 붙던지, 어차피 물건 값어치와 관계없이 물건 구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당연 비용이기에 굳이 신경 쓰지 않는 것과 같다. 화학자들은 물질이 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입자수 변화, 부피 변화에 의해 발생한 에너지 변화(일)에 관심이 없을 뿐이다.

  세금으로 빠져나간 1$에는 관심 없고, 물건 자체(고유) 값어치 10$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는 학문이 화학인가 보다. 그리고 나는 전공을 잘못 선택했나 보다.

 

엔탈피 - 끝 -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 중 오타나 오류 등이 있는 경우 댓글로 알려주시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정/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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